극장가 전쟁이 한창이다. 4월 말 개봉한 마블 시리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5월 극장가까지 휘어잡았다. 5월 중순에는 칸영화제에 초청된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 '버닝'과 괴짜 히어로를 앞세워 시즌 1부터 큰 사랑을 받은 '데드풀2', 스타워즈 시리즈 스핀오프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등 만만찮은 작품이 속속 개봉했다.
그 와중에 '독전'이 순항 중이다. 화려한 캐스팅과 123분을 빨리 지나가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영화제의 데일리 소식지를 통해 북미 개봉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잠시 '대형 외화'가 잠식하는 듯 보였던 극장가에서 분투하는 국내 영화였던 '독전'은 입소문을 타고 관객몰이 중이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겼다. 이는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다. 200만 돌파까지는 8일이 걸렸다. 30일 오후 1시 30분 현재도 실시간 예매율과 좌석점유율 모두 1위다.
'커밍아웃', '신라의 달밤', '품행제로', '안녕! 유에프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집필한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했던 이해영 감독은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아내 그해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번 '독전'은 '페스티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까지 기존 필모그래피와는 완전히 다른 색깔과 질감, 속도를 지닌 영화다.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밀매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으로, 대놓고 오락물이며 '장르 영화'다.
'독전'으로 장르 영화에 데뷔했다고 줄곧 말하고 다닌다는 이해영 감독을 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에게 첫 '장르 영화'인 '독전'에 품었던 궁금증을 물었다. 이 영화에서 줄곧 강조되는 '믿음'과 노르웨이에서 찍은 엔딩에 관해. 아직 '독전'을 만나지 못한 관객을 위한 도움말도 들었다.
(노컷 인터뷰 ① 조진웅부터 진서연까지… '독전' 캐스팅에 관한 모든 것)
일문일답 이어서.
▶ '독전'을 캐릭터 무비라고 설명했는데, 의도한 대로 캐릭터가 잘 살아났다고 생각하는지.
관객들이 배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걸 보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일정 정도는 동의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 아닐까. 주연급 배우뿐 아니라 조연배우들도, 알아줬으면 싶은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반응을 해 주신다. 농아 남매(김동영-이주영)나 보령(진서연) 캐릭터 같은 경우가 그렇다. 주말에 무대인사를 (배우들과) 다녔는데, 특히 진서연 배우를 되게 반갑게 맞아줘서 보람차다고 느꼈다.
보안을 위해 신경 쓴 것? 준열이를 (극중에서) 이선생이라고 안 부르고 락이라고 부른 것이다. (웃음) 농담이다. 근데 여기 카페(인터뷰 장소) 사장님은 매일 락이 이선생이라는 얘기를 듣고 계실 텐데… 관객 한 분을 잃었다. (일동 폭소)
락이 이선생이라는 게 중요한 키다. 반전이라고 한다면 반전이고. 근데 저는 락이 이선생이라고 밝혀지는 그 순간을, 더 극적으로 깜짝 놀랄 만한 반전으로 세팅하는 설정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만약 좀 더 놀라게 하려고 했다면, (서영락의) 성격 설정을 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장치를 훨씬 넣었을 거다. 처음 락이 등장할 때 느낌도 분위기를 잡아주고, 말없이 앉아있는 모습을 계속 간접적으로 반영 이미지를 통해서 다가가지 않게끔 하지 않았을까. 원호에게 락이 말할 때나, 브라이언(차승원 분) 처음 만났을 때 락의 표정에서도 좀 더 페이크를 걸기 위해 노력했겠고.
물론 이선생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모르고 보셔야 하는, 중요한 비밀일 수 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관객을 속이고 뒤통수 치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원호가 계속 맞닥뜨리게 되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매 순간 락이 원호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락의 말, 이 모든 것들이 진심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영화는 노르웨이의 눈길에서 기름을 넣는 원호의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에도 노르웨이에서 다시 만난 원호와 락을 보여준다. 짤막한 대화를 나눈 후 총소리가 들리고, 그게 엔딩이 된다. 이 장면으로 영화를 끝맺은 이유는. 그리고 원호가 죽은 건가. 정말 궁금하다.
어, 못 보셨나? 나중에 문 열고 누가 나오는데… (기자 : 정말인가. 집중해서 봤는데 놓친 것 같다.) 농담이다. (웃음) 그렇게 끝난 것에 대해 어떤 분들은 맹렬히 뭐라고 하시더라. 아까 점심 먹으러 간 식당 사장님도 누가 죽은 거냐고 물으셨다. 찍다 보니 그렇게 끝난 게 아니고, 초반부터 계속 불변의 엔딩이었다. 계속 이렇게 명확한 지점이 있었고 한 번도 변한적 없다. 감독으로서 최선이었다. 감독판을 내 달라는 말도 있었는데, 지금 버전(개봉판)이 감독판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응징하는 이야기로 절대 끝날 수 없다고 봤다. 그게 중요했다. 모든 정체가 밝혀진 후에도 그게 응징으로 해소되지 못할 만큼, 관객이 매혹적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캐릭터가 락이었다. 결국 '감정'이었다. 질주의 끝을 봤던 원호가 마침내 자기가 쫓던 사람을 앞에 두는데, 신봉했던 것의 실체 없음을 보지 않나. 락은 껍데기만 남을 정도로 자신을 쫓아온 한 인물을 바라보는 연민도 있을 거고. 락은 자기 존재 증명을 끝내 하지 못한 인물이니까.
(엔딩에서) 원호라는 캐릭터와 그를 연기한 조진웅이 하나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한다. 원호와 락의 두 얼굴에 제가 담고 싶었던 감정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 마지막 얼굴 두 컷에 모든 마침표가 찍혔다고 생각한다. 다른 옵션이 될 수 있는 컷을 찍어놓은 게 있긴 한데, 기회가 생기면 공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자 : 노르웨이 편집 씬을 보고 싶다는 반응이 많더라) 근데 이미 누군가가 얘기했다. (웃음) 전 얘기한 적 없다. 기사를 잘 보면 나와 있을 거다. (웃음)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얘기하는 믿음이라는 개념은 빌리브(Believe)보다는 트러스트(Trust)에 가까울 텐데 영화 (영문) 제목은 '빌리버'(Believer)다. 빌리브에 가까운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기 나름대로 각각의 인물이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온전하길 바라면서 매달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본다. 특히 원호가 그랬고, 브라이언(차승원 분), 락, 하림 그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가진 신념에 '집착하기 위해 집착'했다. 매달리는 것 자체가 중요했는데 그 끝을 쫓아가다 보니, 자기가 그토록 믿고 싶었던 것이 아무런 실체가 없었다는 허망함. 그걸 깨달을 때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독전'이란 제목은 다시 안 띄웠지만 '빌리버'라는 제목을 한 번 더 띄운 이유다.
▶ 한편으로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도 봤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꼬마가 서영락으로 살지 않나. "그래서요, 제가 누군데요? 전 제가 누군지도 몰라요"라는 락의 대사도 있었고. 이해영 감독은 본인 스스로 어떤 창작자/제작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제 느낌에 원호는 계속 자기가 믿는 신념을 쫓아 질주하는 인물이다. 저 자신을 본다면 원호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놓고 질주하는. 이 영화는 처음 볼 때는 원호의 이야기라서, 원호 입장으로 보게 될 텐데 사실은 락이 원호를 관찰하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락의 시선으로 보면 또 다른 맥락에서의 연민을 읽을 수도 있다. 저는 아직까지는 원호 같은 느낌으로 앞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필모그래피가 더 쌓였을 때, 락 같은 느낌으로 자신을 스스로 관찰하게 되면 좋겠다.
('독전'을) 장르 데뷔작이라고 얘기한다. (웃음) 장르는 약간 작게 말하고, 데뷔작은 크게 말하는. (웃음) 작가 데뷔하고 전작까지 동일한 관성의 에너지로 왔다고 본다. 창작할 때 가진 제 틀 같은 게 생겨버린 것 같아, 그걸 너무 깨고 싶었다. 그걸 깨면서 '독전'이란 영화를 일단 잘 해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비슷할지는 모르지만, 이쪽 방향성을 갖고 계속 달려가고 싶다. 원호처럼.
▶ "쫓다 보면 가끔 내가 뭘 쫓나, 왜 이걸 쫓나 싶을 때가 있거든? 니들은 최소한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원호의 대사는 어느 작업을 할 때에도 새길만 한 말인 것 같다. 처음 생각했던 그 마음과 원칙이 지켜졌나.
아직은 객관적으로 제 영화를 보지 못하니까 자평은 못 하는데 관객이 하는 말을 겸허하게 듣다 보면 일정 정도는 도달한 거 같다. 보완 및 보충해야 할 부분도 있고. 근데 아직은 뭐 데뷔작이니까. (웃음)
뭐, 흥행은 처음 해 봐서. (웃음) 이 속도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손익분기점까지는 아직 남았으니까. 그래도 빠른 거라고 하더라. 손익분기점이 280만인데 넘어야죠. 오늘이 일주일 됐는데 벌써 190만 가까이 보시니까 너무 감사하다. 어떤 영화든 보통 무대인사할 때 사람들이 많이 온다. 근데 온도의 차이는 있는 것 같다. 배우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해 반응해 주시는 온도가 확실히 더 느껴진다.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 마지막 질문이다. 벌써 N차 관람을 인증한 관객들이 있다. 이 영화는 스포일러를 제외한 사전 정보를 많이 확보하는 게 나은가, 아니면 아무 정보도 없이 가야 나은가.
그냥 가시는 게 낫다. 편집하고 후반 작업할 때, 블라인드 시사를 하지 않나. 무슨 영화인지 말 안 해 주고 바로 영화를 보여준다. 그때 보셨던 분들 만족도가 지금 관객 만족도보다 높은 것 같다. 보통 예고편, 포스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시는데 그렇게 보면 어떤 기대가 생기지 않나. 비주얼이라든지, 어느 배우 연기가 좋았다거나. 어떤 것을 볼 거야 혹은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보는 것보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그냥 보시면 좋을 듯하다.
사운드 상태가 극장마다 천차만별이라 어떤 곳에서는 대사가 좀 덜 들릴 수도 있는데, 믹싱 상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영화가 워낙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놓치는 부분은 그래도 되는 거다. 그냥 몸을 내던지고 맡기길 바란다. 그렇게 보는 게 가장 좋다. 이건 오락영화니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