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가 재판을 미끼로 청와대와 부당거래를 시도했다는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당시 사법부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의 설치를 위해 대법원이 주요 정치적 사건의 재판에서 청와대와 교감을 이어온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법원행정처 컴퓨터 4대에 들어있는 3만7,000여개 파일을 전수 조사하면서 확인됐다.
일례로 '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 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국가·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크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경우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아무리 상고법원 도입이 당면 목표였다 해도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양심을 내던진 대법원의 파렴치한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특별조사단은 또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서도 일선 법관들의 동향과 성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내용이 담긴 문서파일의 존재를 확인했다.
당장 정치권과 법조계를 중심으로 '셀프 조사'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28일 "분노를 넘어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조사단이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26일 성명을 통해 "국민의 시각에서 볼 때 조사단의 결과 발표는 사법부에 대한 의혹과 불안감을 해소했다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은 "양승태 사법농단은 박근혜 국정농단과 쌍둥이"라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고, 정의당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제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질지 여부는 전적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단에
달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8일 "이번 일로 국민께 걱정과 실망을 안겨 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합당한 조치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로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발표할 것임을 내비쳤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헌법 제103조는 명시하고 있다.
적어도 김명수 대법원장의 양심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양심과는 다를 거라 믿는다.
사법부의 존립 가치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국기 문란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