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판석 감독 또한 제작발표회 때부터 진짜 연애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을 정도로, '예쁜 누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드라마였다.
'예쁜 누나'에서 극의 중심인 진아(손예진 분)의 죽고 못 사는 친구이자 진아의 연인 준희(정해인 분)의 하나뿐인 누나 서경선을 연기한 장소연 역시, 드라마를 찍으면서 '진짜 사랑이 뭘까'를 고민했다. 여전히 답은 찾아가는 중이지만.
지난 24일,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장소연을 만났다. 촬영을 매일 하지 않아서, 방영 중에도 드라마를 곧잘 봐서, '예쁜 누나'가 끝난 게 믿기지 않는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예쁜 누나'가 끝났다. 잘 떠나보냈나.
인터뷰를 3일째 하고 있는데, 끝난 게 잘 실감이 안 난다. 마지막 촬영할 때도, 종방연 할 때도 (드라마를) 이래저래 많이 봤다. 저희가 촬영을 매일 하지 않았다. 드문드문했다. 그래서 아직도 그 영상 속에 있는 것 같다.
▶ 경선은 상처가 많은 캐릭터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에게 버림받고, 어린 나이에 남동생과 같이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드라마상에서는 이 모든 것에 해탈한 듯 밝게 사는 것으로 그려졌다. 경선 캐릭터를 처음 받아들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또 어떻게 분석했는지 궁금하다.
저는 그 사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다. 캐스팅된 순간, 딱 경선이로 살려고 했다. 그래야 연기할 때 조금 더 편하다.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모습이 나오니까. 계속 생각하다 보니 집에서 물을 마실 때도 (경선이처럼) 나오더라. 경선이와 더 가까워지는, 내 안에서 경선이를 찾는 길이 뭘까 고민했다.
경선이한테는 사람 사이의 친밀감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준희와 진아가 주는 의미가 컸고. 그 둘이 없으면 정말 불행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 둘과의 관계를 많이 생각했고, 그들을 위해 경선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이런 것도 생각했다. 경선이가 그렇게까지 절실히 원했던 건 아마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너무 외로웠으니까.
남녀 간의 사랑은 아니지만 친구(진아)와의 소중한 마음도 그런 흐름에 있었을 거다. 준희는 유일한 가족으로서의 의미고. 경선이 마음에 진아와 준희가 어떤 인물인지 중점을 두고 오래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의지할 수 있고, 한없이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건 서로한테 너무 큰 복이고 선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찍으면서도 '아, 진짜 둘은 참 좋겠다' 싶더라. (웃음)
▶ 현실에도 진아 같은 친구가 있나. 혹시 '예쁜 누나'를 어떻게 봤다고 하던가.
있다. 근데 안 물어봤다. 물어봐야겠네. (웃음) 그 친구는 어떻게 봤을까 되게 궁금해진다. (웃음)
▶ 경선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 한 축이 진아였다면 다른 한 축은 준희였다. 준희는 경선에게 어떤 존재였나.
살아가는 데 너무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 같다. 어릴 때 어머니가 아플 때부터 계속 준희를 걱정했으니까. 아버지가 그사이에 외도를 했으니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 그래도 준희가 최대한 알지 않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지 않았을까. 내가 상처받는 만큼 동생이 똑같은 상처를 받는 걸 원치 않았을 것 같다. 재혼하고 이민 갔을 때는 준희도 이미 알 수밖에 없었겠지만.
같이 잘 살아나가려면 희생 아닌 희생을 했을 듯싶다. 동생을 위해 선택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전공(첼로)을 포기한다든지, 돈 벌기 위해 일하는 것도 그렇고. 뭘 할 때 동생을 먼저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았을까. 자기의 꿈이라든지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을 안 하고.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게 잘 될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부모를 대체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많이 컸을 것 같다.
▶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 준희의 스케치북을 보고 관계를 알게 되는데, 이때 경선의 기분은 어땠을까.
경선이는 눈치가 되게 빠르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고. 그런데도 정말 설마로도 생각을 못 했을 것 같다. 너무 놀랍고 충격적이고 당황스럽고, 약간 말을 못 이을 것 같더라.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감정도 들었겠고. 저도 연기하며 그랬다.
진아 어머니랑 진아 집에서 부딪쳤을 땐 정말 서럽더라. 진아랑 준희가 사귄다는 거 알고 진아 어머니가 저희 커피숍으로 찾아와서 둘을 갈라놓으라고 설득하시지 않나. 그때 사실 그 사람의 진심이 보이니까, 이렇게 할 거라는 걸 아예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 정말 맞닥뜨리게 되니 그게 되게 아프게 느껴지더라. 진짜 엄마는 아니어도 정말 엄마같이 대하고 의지도 많이 했는데… 이해를 못 하겠는 건 아니지만 동생 입장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경선은) 본인 상처보다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캐릭터였다. (그런 수모를 참은 것도) 이 사람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결국 경선은 진아와 준희의 조력자가 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쉽지 않다. 둘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둘의 사이를 받아들이는 자체도 저는 어려웠다. 아, 어떻게 해야 되지? 진아가 내 동생의 여자친구가 되어버리면? 어쨌든 제가 다 터놓고 고민을 토로할 부분이 줄어들게 되니까 그것도 아쉬울 것 같고. 동생한테도 신경 써야 하니 경선이 입장에선 약간 어려운 점이 생겼을 것 같다.
▶ '예쁜 누나'는 진아와 준희의 사랑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이 나온다. 진아가 전 남자친구 이규민(오륭 분)과 헤어졌을 때 그동안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하지 않나. 그때 경선이 "진짜 사랑이 뭔데?"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혹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나.
저도 정말 그 대사를 하면서, 정말 진짜 사랑이 뭔지 궁금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이렇다고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사랑하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정도는 조금씩 더 느꼈던 작품이었다. 남녀 관계든 친구 관계든 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 변화할 수 있는 것. 사람은 쉽게 잘 변하지 않지 않나. 그런데 사랑하면 변할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노컷 인터뷰 ② 장소연 마음 울렸던 '예쁜 누나' 대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