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 인사를 하자 말끔하게 차려입는 노신사는 자신이 전직 목사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 업체의 회장이라고 찍힌 명함도 건넸다.
박모(68)씨에게 보고 있는 유튜브가 어떤 내용인지 물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놀라운 얘기였다”라며 “이런 건 언론이 다루지 않잖아”라고 불만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말에선 TV, 라디오, 신문 등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게 묻어났다.
◇ "김경수가 5.18 폭동 유공자라는데...이런 나라가 어딨나"
그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13살에 국가유공자가 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다른 의혹들도 던졌다. 김 후보에 대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박씨는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타고 이동한 벤츠 차량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타는 벤츠 600이 문재인 대통령이 줬다는 얘기가 있다. 아무나 살 수 있는 차량이 아닌데 문 대통령 정도가 아니면 줄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그가 말한 정보는 하나같이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김 후보와 서 의원은 5.18이 아닌 학생 운동을 하면서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됐다.
◇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벤츠 선물" 가짜 뉴스도
벤츠 차량과 관련한 의혹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정에 불과하다.
앞서 독일 일간 빌트지는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김 위원장이 벤츠 차량을 타고 등장했다며 '새로운 한국 친구들로부터 빌렸을지 모른다'는 농담조의 추측성 기사를 보도했다. 이에 국내 한 웹사이트에서는 '김 위원장이 탄 벤츠 마이바흐 S600 풀만가드가 2017년산이고, 당연히 문 대통령이 그 친구일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기자가 이런 정보를 어디서 들었냐고 묻자, 그는 “다 인터넷이지”라고 말했다. 이런 정보를 40년 된 친구에게 알리다가 우정이 금이 간적도 있었다고 했다.
박씨는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도 외국 언론은 다루는데 우리나라 언론에는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서 “외국 갔다 텔레비전 틀어놓고 침대로 돌아오는데 한국에서 비행기 떨어졌다고 나오더라고. 정말이야. 제주도 공항에 곤두박질 떨어졌다라고. 우리가 그것도 한국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시간차를 두고 미국에서 봤잖아”라고 했다. 비행기 추락사건 역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 "서울에 북한 땅굴...쓰리 스타가 직접 보낸 문자"
탑골공원 입구에서 만난 김모씨(70)도 기존 언론이 아닌 카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세상 소식을 접하고 있다.
김씨는 대뜸 “드루킹? 그거 뭐 비밀 있지. 보수쪽에서는 거의 다 알고 있어”며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정보원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나이 먹은 보수들끼리는 카톡으로 통한다. 방송에는 안 나오는 내용이 이틀, 삼일이면 다 퍼진다.”
같은 내용의 문자가 여러 사람에게 받아볼 때도 많다. 그만큼 ‘가짜 뉴스’가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 씨는 자신이 받은 문자를 주변 지인들에게 퍼나른다. 꼭 알아야 할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에게 “아빠는 왜 이런걸 보내주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라고 한다.
최근에 기억나는 뉴스가 있냐고 묻자 김 씨는 서울에 북한 땅굴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끼리만 공유되는 것”이라며 “과거에 별도 달았던 쓰리 스타 장군이 직접 보낸 문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나라가 지금 이북하고 중국하고 문재인하고 짝짝꿍해서 공산주의 만들려고 하는데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며 “곧 지방자치 투표가 있는데 그게 제일 염려된다”고 말했다.
◇ "박근혜 석방 판결, 남북정상회담으로 연기됐다"는 카톡 문자
공원 내의 벤치에서 만난 이모씨(78)는 더 황당한 가짜 뉴스를 기자에게 귀띔해줬다.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박 전 대통령을 무죄로 석방하라는 판결이 내렸다는 카톡을 받았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류모(80)씨는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 잔디 있잖아. 그걸 다 죽였다는 거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카톡으로 훼손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 사진을 받았다고 했다.
류씨는 “하도 궁금해서 친구한테도 물어봤다”며 “친구가 그거 다 조작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 "문재인 체제에서 똑같은 뉴스만 방송" 기존 언론 불신 극심
최근 노인들 사이에서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SNS를 이용하는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출처 없는 ‘지라시’들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팩트체크 없는 정보가 진실로 둔갑해 오히려 누군가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또 다른 김모씨(79)는 기존 언론을 전혀 믿을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똑같은 내용이 전부 문재인 정부 체계에서 방송이 되고 있다”며 “지금 우리같은 보수 세대는 크게 믿질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가짜 뉴스에 깊게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과 거리가 먼 가짜뉴스가 일부 걸러지면서 가짜뉴스에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석방' 관련 카톡을 보여줬던 이모씨(79)는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긴 뭘 나오냐”며 “요즘 우파 친구들한테 카톡 많이 오는데 진실된 건 별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렇다 보니 ‘그들만의 정보’를 멀리하려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실버영화관’의 직원 이모(72) 씨는 “연천에 사는 태극기 부대 친구에게 가짜뉴스를 받았는데, 나는 그런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다 삭제했다”고 했다.
낙원상가 앞 가판대에서 책 가게를 운영하는 한 노인은 “카카오톡으로는 이상한 게 많이 와 세상 어지러운 게 싫어 카카오톡은 다 지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가짜뉴스는 어디선가 계속 날아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