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다며 신중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SNS상에는 장관 경질 해시태그에 이어 청와대 청원에도 하루만에 만여명이 몰려 항의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법무부는 24일 오후 열린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 낙태하려는 여성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은 최소한으로 드러냈다. 주로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는 입장을 낙태죄 존치의 주요 논거로 내세웠다.
CBS가 공개변론 하루 전에 공개한 법무부의 시대착오적 변론요지서가 일으킨 파장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의사 A씨의 대리인 측 관계자는 "논란이 거세지자 법무부도 비판 받은 부분을 최소화하는 등 수위를 조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법무부는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에 낙태하려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과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서술해 논란을 빚었다.
또 "통상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강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따른 임신을 가리켜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썼다.
임신과 출산, 육아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침묵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한 여성을 바라보는 법무부의 시선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비판적 목소리가 쏟아진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마약 합법화에 비유해 설명한 부분 역시 논란이다.
보도 직후 SNS에서는 '#법무부장관_경질'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인 트윗이 급격히 늘어났다. 법무부 국가송무와 담당 공무원 사무실 전화번호가 공유되는가 하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법무부 장관 경질 요구 청원은 순식간에 만 명을 넘겼다.
정의당 여성당당선거대책위원회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대립하는 이분법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법무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16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도 역시 기자회견에서 "법무부의 의견은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의견의 핵심은 성행위에 대한 임신 책임을 여성이 전적으로 진다는 점, 낙태를 '태아의 생명권 VS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이분법적으로 인식한다는 점, 여성이 낙태에 이를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맥락을 제거했다는 점 등이다.
법무부의 이런 인식이 낙태죄 존치를 강하게 요구해온 일부 종교나 유림 측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정부 부처에서 나왔다는 것도 비판의 결 중 하나다. 김홍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낙태죄 폐지에 대해 이런 황당한 의견을 내는 걸 보니, 법무부는 아직도 박정희·전두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24일 오후 입장 자료를 통해 "일부 부적절한 표현과 비유가 사용돼 부득이하게 낙태에 이르게 되는 여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