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에 발의된 개헌안…정족수 미달로 '사실상 폐기' (종합)

114명 출석… 288명 기준 3분의 2인 192명에 미달
정세균 "30여년만에 추진된 개헌안 투표 불성립…아쉽고 안타까워"
민주 "동시투표 약속 휴지조각 만들어", 야4당 "개헌안 강행은 대치"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에서 개헌안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불성립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발의한 개헌안이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가 불발됐다. 이날 본회의 개의는 개헌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는 헌법 130조 규정에 따른 것이다.

개헌안 발의는 87년 이후 31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정족수 부족으로 인한 불성립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개헌안 투표가 끝난 뒤 "명패수 114매로 투표한 의원 수가 개헌 의결정족수 2/3에 미치지 못해 이 안건(개헌안)의 투표는 성립되지 않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야당 의원들은 이날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개헌안 가결 의결정족수 192명에 미달하면서 '투표불성립' 된 것이다.

정 의장은 "30년 만에 추진된 개헌안이 투표불성립으로 이어져 대단히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20대 국회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1년 반 가까이 머리를 맞대 왔지만 구체적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며 송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개헌안 불발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개헌 저지선(288명 기준 1/3 · 96명)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본회의 불참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야 3당은 전날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철회를 주장했다. 개헌안 부결이 뻔한 결과인데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철회하지 않는 데 대해 정략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드루킹 특검법·추가경정예산안 동시 처리로 힘겹게 정상화된 국회가 다시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본회의에서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개헌안 강행은 대치다. 현재 여소야대에서 개헌안 국회 통과가 불가하다는 건 다 안다"며 "개헌과 선거제도 성사를 위한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은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한국당 책임이 크다"면서도 "대통령 개헌안 부결이라는 상황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앞으로 국회 개헌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인지 다시 한 번 같이 깊이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국회의장과 야3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안을 철회하지 않는 이유는 6월지방선거 동시 개헌이라는 공약을 지킨다는 의미와 함께 개헌무산의 책임을 국회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려 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야당들도 대선 공약파기를 비롯해 위헌 상태인 국민투표법 개정 역시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당이 개헌을 약속했음에도 막상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회 개헌안 마련을 촉구했지만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을 추진할 경우 여권에 유리할 것이라는 정략적 판단에 의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개헌을 주장하며 문 대통령을 압박했던 한국당은 '연내 개헌'으로 입장을 바꿨다가 '10월 개헌'으로, 다시 '6월 개헌안 발의'로 한발씩 발을 빼며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본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선 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국회의원은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과 함께 임기를 시작했다. 따라서 대통령 개헌안 처리를 위해 의결에 임해야 한다"며 "솔직히 개헌불발 대환란의 주범은 홍준표 대표다. 개헌과 지방선거 동시투표 약속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고 질타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연내 개헌 성사를 위해 '8인 개헌협상회의' 추진, 국회 헌정특위 활동기한 연장, 5월 국회에서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통과 등을 주장하며 개헌의 불씨를 살리려 하고 있다.

정 의장도 이날 본회의에서 사실상 부결을 발표하면서 "6월 안에 여야가 국회의 개헌안을 발의 해 달라. 제헌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개헌이 성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고 촉구했다.

정 의장은 "대통령 개헌안은 사실상 부결이지만 국회의 개헌안은 아직 진행중이다"며 "최대한 빨리 국회가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내놓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한국당이 개헌에 소극적인데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번 개헌안 불발 사태로 개헌 동력이 꺼지면서 20대 국회에서 더 이상의 논의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2020년 치러지는 21대 총선과 연계한 개헌론 혹은 21대 국회에서나 개헌국민투표를 추진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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