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최근 2위까지 치고 올라온 독수리 군단의 상승세를 보여주듯 홈인 한화 팬들이 뜨거운 햇살에도 선수들의 경기 전 훈련 장면을 열심히 지켜봤다. 이들 중에는 서울에서 '직관'을 위해 달려온 팬들도 있었다. 이상헌(38)-최보윤(35) 부부다.
이들 부부는 시즌권을 끊고 1년에 20번 이상 대전을 찾는 열혈 이글스 팬이다. 당초 남편 이 씨가 경상도 출신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삼성 어린이 회원으로 자랐지만 2015년 팀을 바꿨다. 전임 김성근 감독 시절 '마리한화' 돌풍에 끌렸고, 아내도 남편의 야구 열정에 덩달아 합류했다.
하지만 아픔도 컸다. 한화는 김 감독 시절 끈질긴 경기와 역전승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이른바 혹사 논란으로 팀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무리한 불펜 운용과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팀도 3년 연속 가을야구에서 소외됐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어두운 그늘이 극명하게 갈린 한화의 3년을 온전히 함께 했던 부부다.
그런 이상헌-최보윤 부부는 요즘 살 맛이 난다. 한화가 암흑기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최 씨는 "3년 동안 한화 보살 팬들에게 생긴 사리가 없어진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남편 이 씨도 "요즘 한화 경기를 보면 '우리가 알던 그 팀이 맞나'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맞장구를 쳤다.
불펜진도 좋아졌지만 특히 외야진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이 씨는 "예전 한화 경기를 보면 외야수들이 불안했다"면서 "그러나 올해는 정말 든든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프로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다르면 올해 한화 외야진의 평균대비수비승리기여(WAA)는 0.871로 10개 구단 중 단연 1위다. 2015~2017년에는 각각 5, 9, 7위였다.
무엇보다 올해 합류한 우익수 재러드 호잉(29) 효과라는 것이다. 최 씨는 "호잉이 어려운 공을 척척 잡아준다"고 칭찬했다. 호잉은 평균 대비 수비 승리기여(포지션조정 포함)에서 0.648로 리그 전체 2위, 외야수 중 1위다. 부상으로 이탈한 좌익수 양성우가 전체 4위(0.506)다. 실제로 한화 관계자는 "호잉을 영입하면서 외야 수비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그런 호잉이 타석에서도 불방망이를 휘두르니 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 씨는 "원래 김태균을 좋아했다"면서 "그런데 올해는 김태균에게 살짝 미안하지만 호잉이 너무 잘 해서 팬이 됐다"고 말했다. 한화 관계자는 "원래 외인들은 내년 거취가 당장 어떻게 될지 몰라 유니폼 판매가 적다"면서도 "그러나 호잉은 5월 들어 선수단 1위를 달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인 요청에서도 단연 1위다.
호잉의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한화는 연장 11회말 송광민의 끝내기 안타로 8-7 승리를 거뒀다. 한화는 이날 넥센에 진 SK를 밀어내고 10년 만에 단독 2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호잉은 미국의 부모님이 방한해 직접 경기를 지켜본 가운데 뿌듯하게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시즌 5번째로 1만3000 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경기 중 내리기 시작한 비에도 아랑곳없이 '최·강·한·화'를 외쳤고,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이상헌-최보윤 부부도 짜릿한 승리를 만끽했다. 하마터면 대역전패를 직관해 서울에서 온 보람이 없어질 뻔했지만 대역전승으로 대전행이 전혀 아깝지 않게 됐다. 최 씨는 "오늘 경기는 정말 최고였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고, 이 씨는 "오늘은 한 마디로 호잉이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호잉도 경기 후 "9회말 동점 홈런에 나도 감격했다"면서 "질 뻔한 경기를 연장으로 이끌었고 결국 팀이 승리해 정말 기쁘다"고 활짝 웃었다. 이어 "팬들의 응원을 들으면 더 큰 에너지가 생긴다"면서 "다른 팀 팬들이 나를 응원하겠다고 하면 언제든 환영한다"고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p.s-이상헌-최보윤 부부는 벌써부터 가을이 걱정이다. 이 씨는 "정규리그는 시즌권이 있지만 포스트시즌은 예매를 해야 한다"면서 "표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화는 백업 멤버가 적어 한번 고비가 올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올해는 5위 이상 성적을 거둬 가을야구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07년 이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의 꿈에 부푼 한화 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