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웃지 못할 '미스 함무라비' 갑질 청탁 의원

1회 호조의 출발…현직 문유석 판사가 쓴 사실적 대본 적중
판사이기에 앞서 '사람'인 주인공들 희로애락으로 '눈도장'
법원 내 갑질·차별 등 코믹하게 다루며 시청자 호기심 충족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 등장한 갑질 국회의원(사진=방송 화면 갈무리)
JTBC 새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판사가 대본을 썼다는 데 특별한 차별점을 지녔다. 판사 일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들이 세밀하게 극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욱이 대본을 쓰는 판사가 그간 사회적 약자를 향한 예민한 감수성으로 시대를 위로해 온 서울동부지방법원 문유석 부장판사다. 이 점에서 드라마 속 에피소드는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뒷맛을 남긴다. 지난 21일 밤 '미스 함무라비' 첫 방송에서 소개된 국회의원 에피소드가 그랬다.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이러는 겁니까? 의원님이세요~!"

바깥에서 소란이 일자 서울중앙지법 제44부 판사 임바른(김명수)은 속기실무관 이도연(이엘리야)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묻는다.

"밖에 누가 오셨나요?" "임 판사님 고등학교 선배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한 분 와 계십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네."

문을 열고 들어선 해당 국회의원은 환한 얼굴로 다짜고짜 "아이고 임 판사, 반갑네. 하하하하. 나 54기 김명국입니다. 임 판사가 아마 69회지? 동창인 명부에서 봤어"라며 임바른의 어깨를 툭 친다.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요"라는 임바른의 물음에 김 의원은 "여기 법원장이 초청해서 왔어. 국민과 소통하는 법원 행사에 한말씀 해달라고 해서 말이야"라고 답하면서 거들먹거린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임바른과 마주한 김 의원은 아래와 같이 말을 잇는다.

"다 마치고 우리 후배님 한 번 보고 가려고 들렸지. 법조 동문들로부터 우리 임 판사 소문은 들었어요. 연수원 수석이라지? 동문을 빛낼 인재라고 아주 칭송이 자자해. 내가 초선이지만, (국회) 법사위 소속 아닌가. 법원 일에 관심 많아요. 법원장한테도 내가 우리 임 판사 칭찬 많이 했습니다."

임바른은 속으로 생각한다. '본론을 얘기하시지, 본론을.' 곧이어 김 의원의 본론이 나온다.

"실은 말이야. 내가 이것 때문에 여기 들른 건 아닌데, 내 지역구 후원회장님이 계셔. 성 회장님이라고, 건설업을 아주 크게 하시는데 사업을 크게 하시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송사에 휘말리나봐. 여기 재판부에 뭐가 하나 걸려 있다고 하네."


본론을 들은 임바른은 원리원칙주의자답게 "거기까지 하시죠.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시면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제가 의원님을 신고하게 됩니다"라고 말을 자른다.

이에 어처구니 없다는 듯 김 의원은 옷깃을 여미며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험하게 해. 그게 동문 선후배 사이에 할 소리야?"라고 목청을 높이고, 임바른은 "오늘 저와 초면 아니신가요? 저와 의원님의 인연이란 특정 고등학교를 각자 다른 시기에 다녔다는 것뿐입니다"라고 맞선다.

김 의원은 "아니, 나이도 어린 친구가 어디 하늘 같은 대선배한테! 이런 싸가지 없는, 내가 누군줄 알아?"라며 의원 배지가 달린 옷깃을 내밀며 압박하지만, 임바른은 "자아는 스스로 탐구하시죠. 그리고 저, 의원님 친구 아닙니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래, 나한테 이렇게 하고 어디 그 잘난 판사 오래 할 수 있는지 보자, 이 어린 놈의 자식아!"라는 김 의원의 도발에 임바른은 아래와 같이 맞받아친다.

"이봐요, 김명국씨. 법사위 의원이면 판사 옷도 벗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헌법 공부부터 하세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않습니다. 제 옷을 벗기고 싶으시면 국회에서 탄핵소추 의결부터 하셔야 합니다. 초선 의원은 의안 발의하기도 버거울 테니 좀 더 노오오력 하시죠. 한 3선은 하시고 추진해 보시던가."

분을 이기지 못하는 김 의원을 앞에 두고 임바른은 전화로 "손님 가십니다"라고 알리고는 사태를 마무리 짓는다.

'미스 함무라비'는 1회 시청률 4.2%(닐슨코리아 수도권·유료가구 기준)를 찍으며 호조의 출발을 알렸다. 현직 판사가 대본을 쓴 사실적인 법정물에 대한 호기심이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성차별 발언을 하는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을 향해 미니스커트와 전신을 덮는 차도르로 번갈아 일격을 날리는 박차오름(고아라), 밖에서는 판사라고 대접 받지만 집에 오면 박봉과 전셋값 걱정에 휩싸이는 임바른, 일반 회사와 다름없이 아부와 의전이 필요한 회식 에피소드 등, 판사이기에 앞서 사람인 주인공들의 면면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는 현직 판사가 집필한 사실적인 대본의 힘이리라. 드라마를 보면서는 웃더라도, 끝나고 난 뒤 한 번 곱씹게 만드는 '사람 중심' 이야기. 기존 선정적인 사건을 전면에 내세워 자극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됐던 법정극에 질린 시청자들이 '미스 함무라비'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면서 약자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대본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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