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세월호는 '그곳'에 있는데, 달라진 건 당신일지도" - 연극 '벡사시옹+10층' 윤혜진 연출
② "'세월호'는 기억하면서, '남은 자'는 잊지 않았나" - 연극 '행복한 날들' 송정안 연출
③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은 그만두어야" - 연극 '광인일기' 김수정 연출
④ "계속 시도해야죠, 닿지 않고 노력만 남을지라도" - 연극 '키스' 신재훈 연출
⑤ "그럼에도 나는 이 절망 속에서 너를 희망한다" - 연극 '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송경화 연출
(계속)
(모든 작품에게 있는 요소이지만) 그의 작품은 유독 해석이 열려 있다. 선명하지 않아 다양하게 보이는 탓이다.
그가 쓴 1977년 발표한 소설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은 '나'라고 하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해 독백으로 끝난다.
'나'는 '너'에게 쉬지 않고 말하는데, 그 이야기 안에는 염세·분노·미안함·좌절 등의 감정이 담겼다.
'나'가 어떤 이유로 이 사회에 분노하는지를 안다면 좋지만, 사실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나'가 '너'와 함께 머물 안식처를 찾기 위해 그 밤거리를 떠돈다는 점이다.
또한 '나'는 그 안식처를 '방', '숲', '풀밭' 등 다양하게 부르지만 이름 역시 중요치 않고, 그 안식처가 실재하는지도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더러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 밤, 지독한 절망 속에 있는 '나'가 그럼에도 '너'와 함께하기 위해 방을 찾으려고 시도한다는 용기 자체이다.
그는 이번 연극이 세월호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 '참회록'과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세월호를 마주하고자 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는 자괴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앞으로도 바꿀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절망감, 구조의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구조에 순응한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비겁함을 견딜 수 없어 지껄이는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연출의 글 中)
보통 10분 전후로 끝나는 연출과의 인터뷰가, 송 연출과는 40분 넘게 걸렸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추상화 같은 죄의식(?)을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표현을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기자는 고 민영규 시인의 '떨리는 지남철'이 떠올랐다.
"북극이 가리키는 / 지남철은 / 무엇이 두려운지 /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 야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 그 지남철은 / 자기에게 지니워진 / 사명을 완수하는 의사를 /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여 /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 믿어도 좋다 / 만일 그 바늘 끝이 / 불안한 전율을 멈추고 / 어느 한 쪽에 고정 될 때 /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세월호 참사 문제에서 "할 만큼 했어", "이 정도면 됐으니 그만하자"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있다 한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별로 한 게 없는 사람일 것이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송 연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망 속에서 너를 희망한다"며 다시 용기를 낸다고 했다.
그 안식처가 무엇인지도, 찾으려 한다고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지 않고 뭐라도 하겠다는 의지이자 행동인 것이다.
"사람의 발을 잡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이고, 사람을 앞으로 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이다." (미나가와 료우지 作 <암즈>(ARMS) 中)
다음은 송경화 연출과 1문 1답.
= 작가는 베르나르-마리 콜테스(1948~1989)로, 41살 나이로 요절한 프랑스 배우이자 희곡작가이다. <로베르토 주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등의 작품으로 제2의 사뮈엘 베케트로 불린다. 원작은 그가 1977년 발표한 작품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이다. 지독히 외로운 '나'(화자)가 '너'(친구, 마마)를 만나기 위해 어떤 길과 길모퉁이에서 쉬지 않고 말을 거는 작품이다.
▶ 콜테스의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 원작은 예전에 읽은 적이 있고, 이번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2018>을 위해 작품을 찾다가 이게 다시 연상됐다. 이유는 우리가 세월호를 마주하고 만나려고 애쓰고 있지만, 세월호를 마주할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언제나 들어서이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우리는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 하지만 결국엔 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의 노력만 하고 있지 않나. 좀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광화문광장, 팽목항, 기억교실 등을 방문했지만 그 또한 나의 죄책감 혹은 부채감을 덜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을까 싶었다. 내가 정말 세월호를 만난 건지, 만나고 있는 건지, 만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 그런 면에서 나를 비롯한 우리가,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의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가 말하는 방은 '너'와 함께 아무 걱정도 불안도 없이 쉴 수 있는 곳이다. 작품에서는 방, 숲, 풀밭, 들판 등이 동의어로 쓰인다. 그곳을 찾은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곳을 찾기 위해,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머물수 있는 방을 찾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노력하겠다는 고백이고, 그것이 너를 만나기 직전의 그 순간이다. 그 방이 없을지언정 없다고 생각하면 살 수 없지 않을까. 없다 하더라도 내게는 있어야만 한다. 있을 것이라고 해야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큰 절망 때문에 한 줄기라도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 원작은 1인 독백인데, 연극에서는 4인이 등장한다.
= 한 사람의 언어보다 여러 사람의 말투와 소리로 들릴 때 관객이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다양해진다고 봤다. 이 작품이 누군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 광화문 광장을 지나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캐스팅했다. 배우들에게도 광화문 뒷골목을 맴도는, 스쳐지나가는 우리들이기를 요구했다.
= '나'는 이 구조 안에서 스스로 이방인으로 정체성을 삼는다. 이방인이 되고자 일을 그만두고, 이 구조 안에서 벗어나려 했을 때 고립감이 찾아오고,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다. 이 구조를 벗어나면 누군가와도 진짜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그런 '나'가 대화하고자 하는 '너' 역시 다양하게 해석될 것 같다. 연극에서는 친구, 형제, 조합의 동지, 직장 동료 등으로 보이는데, 어느 순간 마마로도 나온다. 마마는 뭘까.
= 저작권의 소유주가 공연 허가 과정에서 원작을 그대로 살릴 것을 전제조건으로 요청했다. 마마는 이방인이 된 나가 어느 다리위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마마는 나가 그토록 찾고 있던 '너'다. 간절히 마주하고자 하는 '너'. <세월호 2018>에서 우리는 '너'를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들이라고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마마와 다리에서 만나는 장면은 팽목항의 어느 하루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꿈 속일 수도 있고 생각했고, 나에게 마마는 미수습자분들을 연상케했다. 내가 관계하고자 하는 모든 '너'는 '마마'이며, '마마'는 모든 너다.
▶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 어쩌면 이 작품은 내가 스스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분들에게 방을 찾지 못한 이유, 그래서 더 다가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너무 미안해서 끝없이 변명을 하기 위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이고 풀밭이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방에 이르러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작품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용기를 내면 잠시라도 머물수 있는 방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오늘은 나는 용기를 내겠어. 지금은 비에 젖어 형편없는 모습이지만." 용기를 내야겠다.
※ 5주차 공연 '키스'는 20일부로 공연이 끝났다. 6주차인 이번 주에는 '말테'(링크)가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한다. 1만 원~1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