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 경영' 구본무 회장 별세…LG 4세대 승계 본격화

23년간 그룹 이끌며 가치창조형 일등주의로 글로벌기업 육성
차세대 리더 구 상무, 그룹 재편 주목…전문경영인 체제 강화할 듯

구본무 회장. (사진=LG그룹 제공)
구본무 LG 회장이 20일 오전 9시 5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LG그룹에 따르면 구 회장은 1년간 투병 끝에,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

장례는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가족 외의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다. 애도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유족 측은 밝혔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LG가(家) 3세대 총수'인 고인은 지난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다.

연세대를 다니다 미국 애슐랜드대 경영학과와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잇따라 졸업한 뒤 1975년 ㈜럭키에 입사하면서 기업 활동의 첫 발을 내디뎠다.

약 6년 간 럭키 수출관리부장, 유지총괄본부장 등을 맡으며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익힌 고인은 1981년에 금성사 이사로 승진했다. 이후 럭키금성 기획조정실 전무, 럭키금성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경영 활동을 본격화했다.

럭키 입사 15년만인 1989년에 LG그룹의 부회장이 됐다. 같은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LG 그룹 회장이 되기까진 이후 5년이 더 걸렸다. "재벌이라는 권위 보다는 소탈한 인화의 리더십을 가진 최고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게 된 것도 이 같은 성장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이밖에 LG상록재단 이사장과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 LG프로야구 구단주 등도 지냈다.

고인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인 전기·전자와 화학 사업은 물론 통신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의 경영철학은 '정도 경영'으로 집약된다. '꾸준한 혁신을 통한 실력배양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는 그의 철학은 1995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줄곧 추구해왔다.

"경쟁방식에 있어서는 부당·편법이 없는 정당한 경영활동으로부터 실력에 기반한 정정당당한 경쟁으로 나아가야 하며, 조직운영 방식에 있어서는 공평한 기회 제공, 성과에 따른 공정한 평가·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는 늘 강조했다.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도전주의와 시장선도 등도 경영 이념으로 삼으며 LG그룹의 '기술개발력 제고'와 '세계화 추진' 등 제2의 경영혁신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한 발 앞선 기술과 남다른 생각으로 고객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상품을 반드시 만들어 낼 것"을 주문했다.

"웬만해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는 인화 정신도 구 회장이 그간 핵심 인재 유치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설명해준다. 지난 2016년에는 석박사급 R&D 인재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채용설명회인 'LG테크노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직접 찾기도 했다.

특히 디스플레이, 2차 전지, 통신 사업 등은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이끌어낸 구 회장의 대표 사업이다.

1998년 반도체사업의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영위하고 있었던 TFT-LCD사업을 따로 분리, 별도의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하고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매각한 '반도체 빅딜'을 추진했다.

LG는 1년이 넘는 협상 끝에 1999년 5월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민간기업 사장 최대 규모인 16억달러의 외자유치에 성공, 3개월 후 합작 법인인 LG필립스 LCD가 출범했다. 이후 필립스와 결별, 2008년 단독 법인인 LG디스플레이가 출범하면서 LG디스플레이는 LCD 패널 세계 1위로 거듭났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구 회장이 1992년부터 시장 선도를 외치며 시작, 20년이 넘는 연구개발 끝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쳐 LG의 주력 사업으로 성장했다.

또 LG는 1996년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고, 2000년 유선사업을 인수하면서 뒤늦게 통신사업에 뛰어들었지만 LTE로의 과감한 전환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자로 부상했다. LG유플러스는 LTE 투자 및 상용화 9개월 만에 전국망 구축에 성공하는 등 이동통신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연구개발(R&D)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사진=LG그룹 제공)
구 회장이 타계하면서 LG그룹 경영의 지휘봉은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쥐게 됐다.

구 상무는 구본무 회장의 양자이자 친조카로, 친부는 구 회장의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다. '장자승계 원칙'을 지키는 LG그룹 가풍으로 2004년 구본무의 양자로 입적됐다.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2004년 고인의 양자로 입양된 구 상무는 구 회장이 투병중이던 지난 17일 열린 LG그룹 지주사 ㈜LG 이사회에서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이날 이사 선임을계기로 그룹 승계 과정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다음달 29일 열릴 ㈜LG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계기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978년 1월생인 구 상무는 영동고등학교와 미국의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했다. 입사 10년여만인 2015년 상무로 승진했다.

LG전자 미국 뉴저지법인과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선행상품기획팀, H&A(홈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 창원사업장, ㈜LG 경영전략팀 등을 두루 거치며 제조·판매ㆍ기획 업무 경험을 두루 쌓아 왔다.

올해부터 구 상무는 LG전자의 성장사업 중 한 축인 B2B사업본부의 ID(정보디스플레이) 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ID사업부는 디스플레이 산업 핵심 성장 분야인 사이니지 사업이 주력인 부서로, 전자·디스플레이·ICT·소재부품 등 주요 사업 부문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구 상무는 그룹 지주회사인 ㈜LG의 하현회 부회장을 비롯한 6명의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에게 계열사별 현장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큰 틀의 경영 좌표를 제시하면서 신성장 사업 발굴에 주력할 전망이다.

자동차 전자장비(전망) 사업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등이 'LG 4세대 총수' 구 상무가 주력할 미래 사업 후보군으로 꼽힌다.

그동안 와병 중이던 구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그룹 총괄 경영을 맡았던 구본준 부회장은 당분간은 과도체제에서 구 상무에게 '조언자' 역할을 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계열 분리할 가능성도 관측된다.

구 상무는 현재까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고 경영전면에도 나서지 않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평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존중하고 야구 관람도 같이 즐기는 등 소탈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실행을 깊이 챙기고 실무진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까지 짚어낸다는 것이 LG 내부의 평가다.

구 상무가 보유한 LG그룹 지분은 ㈜LG 6.24%, 판토스 7.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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