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칸 해변에서 만난 그는 마치 영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 어디로 튈지 모르면서도 삶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지닌 여주인공 해미와 비슷했다.
매 질문에 곰곰이 생각한 뒤 한 박자 늦게 답을 내놓았지만, 솔직하고 진지하면서도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했다.
"저는 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시절마다 제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것을 느꼈는지를요. 감독님과 만났을 때도 제가 자라온 환경과 저라는 사람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죠."
전종서는 데뷔작으로 이창동 감독을 만났고,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는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도 캐나다에서 졸업했다.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진했지만, 학교에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제도권이 싫었어요. 재미가 없었죠. 정해진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혼나고, 수업 자체도 흥미롭지 않았어요."
그는 배우의 꿈을 키우며 연기학원에 다니다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 곧바로 '버닝'에 캐스팅됐다.
'버닝'은 서로 다른 환경에 있는 두 남자 종수(유아인)와 벤(스티븐 연)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홀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성 해미의 이야기를 그린다.
해미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원주민의 춤을 추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할 만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창동 감독도 영화의 모든 것이 집약한 장면으로 이 대목을 꼽았다.
"저는 너무 좋으면 슬퍼져요. 막 행복하다가 끝나버릴 것 같고…노을도 그렇잖아요. 미친 듯이 아름답다가 금세 져버리죠. 그런 제 마음과 해미의 생각이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각박한 상황 속에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의 몸부림인 것 같다"고 해미의 춤을 해석했다.
전종서는 "이 영화에는 제 모습이 많이 투영됐다"면서 "특히 20대 인간, 여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담겼다"고 했다. "누구나 외롭고 힘들고, 어떤 꿈을 갈망하고 살잖아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그는 제법 수위가 높은 노출신을 찍었다.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도전일 법 한데, 개의치 않은 듯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별로 부담이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선 "제가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아주 컸다"고 떠올렸다. 배우가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도록 기다리고 배려해준 감독 덕분이다.
전종서는 "사람의 감정을 끝까지 끌어내리는 징그러운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한다. "저라는 사람 자체가 그런 징그러운 구석이 많아요. 친구들이 저와 예기하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하죠. 그게 저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