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이라도 찾았으면" 5·18기념식서 공개될 행불자 가족 사연

38년 동안 아들 찾아 전국 해맨 이귀복씨

(사진=조시영 기자)
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행방불명된 이창현군의 사연이 공개될 예정인 가운데 5·18행방불명자를 찾는 일도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5·18 당시 7살 아들 창현군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사연으로 무대에 설 이귀복(83) 씨.

이 씨는 살아 생전 아들의 유골이라도 찾아서 묻어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 씨는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던 1980년 당시 직장일로 인해 가족들을 광주에 남겨놓은 채 전남 완도에 내려가 있었다.

그는 5·18 소식을 듣고 가족들 걱정에 허겁지겁 광주로 향했다.

이 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 창현 군을 잃어버렸다는 비보를 접했다.


창현 군은 1980년 5월18일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들을 찾아 나선 이씨는 병원이란 병원은 안 가본 것이 없다.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곳이란 곳, 아들이 묻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산이란 산은 모조리 찾아 다녔다.

그렇게 아들을 찾아 천국을 해매고 해맨 사이 38년이 흘렀다. 결국 시신은 찾지 못한 채 아들은 행방불명자 신분이 됐다. 그나마 5·18희생자로 인정받은 게 위안이었다.

군사 기록과 민간 기록 등에 창현 군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총기 사망 자료가 있어서 였다.

(사진=조시영 기자)
이씨는 "어린 나이에 꽃을 피어보지도 못하고 갔으니 아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며 "국방부 자료 어딘가에는 암매장 위치가 남아있을텐데. 정부가 나서서 유골이라도 찾아줘, 아들을 묻어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5·18이 38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시신 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는 441명에 이른다.

이마저도 가족의 신고에 의한 집계일 뿐이다. 실제 행방불명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구나 창현 군 처럼 관련자료가 있어 공식 행방불명자로 인정된 사람은 81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행방불명자 가족들이 변변한 보상조차 받지 못한 이유다.

가족들은 지난 2017년 행방불명자들의 암매장지로 지목된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발굴 작업이 진행돼 한가닥 기대를 걸었지만 현재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행방불명된 이들을 찾는 일 역시 묻혀 있는 광주의 진실을 찾는 일이다.

5·18특별법이 제정돼 국가차원의 암매장 발굴 작업이 본격 이뤄져 38년이 지나도록 행방이 묘연한 이들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18일 열리는 38주년 5·18기념식에서 5·18 당시 행방불명된 창현 군과 38년 동안 아들을 찾아다닌 이귀복씨의 사연을 시네라마 형식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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