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헌트리 씨와 바바리 피터슨 씨는 입국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신군부가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짓밟는 과정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5·18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일각의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피터슨 여사는 "5·18 당시 수많은 사망자들과 부상자들을 봤지만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며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고 했다.
피터슨 여사는 1980년 5월 헬기 사격을 직접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피터슨 여사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아들 둘을 지하실로 대피시켰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며 "당일 남편이 찍은 헬기 사진은 지난 1995년 나온 남편의 회고록 '5·18 사태'의 표지에 실렸다"고 덧붙였다.
피터슨 여사는 이어 "5·18 사망자는 공식적으로만 800명이 넘는다"며 "800명이라는 숫자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수치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헌트리 여사는 1980년 5월, 22명의 광주 시민들이 자신의 집에 머물렀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헌트리 여사는 "대학생 7명 등 22명이 계엄군의 진압을 피해 우리 집에 머물고 있었다"며 "우리는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헌트리 여사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광주 상황을 파악하고자 친척을 보낸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헌트리 여사는 "1980년 5월 광주는 외부와 연결된 모든 전화선이 끊겼었지만 한 여성이 우리 집에 오면서 갑자기 전화기가 울렸다"며 "여성은 청와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 자신이 광주 기독교병원 등을 다니며 직접 목격한 사실들을 전달했다"고 했다.
헌트리 여사와 가족들은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남편의 뜻을 존중해 오는 17일 유골 일부를 양림동 선교사 묘지에 안장할 예정이다.
헌트리 여사의 남편 찰스 헌트리 목사는 지난 2017년 오월 어머니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한 달 만에 숨졌다.
헌트리 여사와 피터슨 여사 등 가족들은 19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2018 아시아 포럼과 5·18 국가기념식 등에 참석해 그들이 겪은 5.18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