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영변 냉각탑 폭파'쇼'와 다른 점

'미래의 핵' 포기한다는 의미…北의 선제적 조치란 점도 주목할 만

풍계리 핵실험장 (사진=38노스 화면 캡처)
북한이 오는 23∼25일 함경북도 길주군의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방식으로 공개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사례처럼 '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의 특성과 북미 대화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핵고도화를 실제로 멈출 수 있는 조치라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

북한은 2008년 6월 비핵화 의지 표시의 일환으로 영변 5㎿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 가동일지를 제출하는 등 '성의'를 보이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이에 북한은 불능화 대상이던 영변 5㎿ 원자로 냉각탑 폭파로 화답했다.

당시 한미 정보당국은 냉각탑의 수증기 유무를 인공위성을 통해 관찰해 원자로 가동 여부를 파악해왔다. 영변 냉각탑은 북핵 개발의 '상징'같은 곳이었던 셈이다. 폭파 장면은 수시간 뒤 전세계에 녹화중계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에도 핵개발을 계속 해 왔음을 밝히면서,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고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 쇼를 벌였다는 배신감이 국제사회에 퍼졌다. 이같은 역사 때문에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역시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풍계리 핵실험장은 여전히 일부 갱도가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내열제와 증발장치 등이 이미 제거돼 용도폐기된 '빈 껍데기'상태였던 영변 냉각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다.

오히려 풍계리 핵실험장이 일종의 핵능력 고도화 단계에서 필요한 시설이고 '미래의 핵'을 차단할 수 있는 조치란 점에서 '완전한 비핵화'의 첫 발을 내딛었다는 나름의 상징성을 갖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시설보다 더 크고 건재하다"고 말한 바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은 최종적으로 핵물질을 농축해 실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상징적인 폐기가 아니라 지금도 사용가능하고 미래 핵 개발에 있어 폭발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주요 시설을 폐기한다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아직 성공하지 못한 수소탄 실험을 위해서라도 (풍계리 실험장이) 필요한 측면이 있는데 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면서 "미래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능력을 지금 상태에서 멈추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초기 조치로, 비핵화가 시작됐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상당한 성의를 보여 주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며 "남북 간 시간 통일에 이어 남북 정상회담 때 약속했던 사항들을 하나하나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국제사회와 북한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던 영변 냉각탑 폭파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북미 간 직접 대화 속에서 '선조치'가 이뤄졌단 점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008년 6월 영변 냉각탑 폭파 직후, 금강산에 간 남측 관광객이 북한군이 발사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8월에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연기에 반발한 북한이 영변 핵시설 조치 중단을 선언하는 등 분위기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 두달 사이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모두 속도감있게 열리면서 어느때보다도 비핵화 협상에 힘이 실린 상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과거 냉각탑 폭파는 북미 간에 주고받기 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협상 칩이 아닌 북한의 선제적 조치로 이뤄져 진정성과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에 전문가를 부르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십년의 핵 협상을 통해 정부 관료들 중에도 일반 핵전문가 수준 이상의 전문가들이 존재한다며 이는 기우라는데 무게를 실었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도 전에 전문가들을 들여 마치 사찰 검증 단계를 밟는듯한 그림을 연출할 필요가 없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이 선제적 조치를 한 것이니 검증을 회피하는 것으로만 보기에는 지나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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