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아파트 하자 4년 민원…제도에 두 번 눈물

한국시설 안전공단에서 '하자 판정' 내린 아파트 부산 영도구청은 "문제없어"

부산의 한 소형 아파트에 배출구가 없는 배기시설이 설비되는 하자가 발생했지만, 승인을 내준 영도구청과 시공사는 사실상 '나 몰라라'식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자료사진은 한국시설안전공단이 하자아파트와 정상 아파트를 비교한 보고서 캡쳐
부산의 한 소형 아파트에 치명적인 하자가 발생했지만, 승인을 내준 구청과 시공사는 사실상 '나 몰라라'식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 2013년 말, 혈액암 투병 중에 영도구 청학동의 한 새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최수희(67·여)씨.

그녀는 지난 4년여 동안 자신을 힘들게 한 것이 암 투병 생활이 아닌 아파트 하자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새 아파트에 이사 왔지만, 최씨는 첫날부터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이사 온 날부터 아래층 주민의 담배 연기와 각종 생활 냄새가 안방 욕실을 통해 고스란히 올라왔다"며 "날이 지날수록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악취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수년 동안 시공사와 관할구청인 영도구청은 물론 국토부 분쟁조정위원회에까지 민원을 제기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마지못해 시공사가 화장실에 조그마한 창문을 하나 뚫어 줬을 뿐, 근본적인 악취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최씨는 주장했다.


최씨는 마지막 하소연할 곳을 찾아 지난해 국민인수위원회에 아파트 악취문제와 불성실한 분쟁조정위원회 조사관을 감사해달라는 민원을 접수했다.

국민인수위원회로부터 해당 사건을 이송받은 한국시설안전공단은 1년간의 현장 조사 끝에 배기시설 부분 하자 판정을 내렸다.

한국시설안전공단 감사실 담당자는 "안방 욕실에 건물 2층부터 6층까지 연결된 냄새 배출통로가 시공돼있지만, 정작 냄새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배출구가 건물 최상부에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악취가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라며 "어떻게 이런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공단은 또 지난 2015년 하자심사와 분쟁조정사건 업무처리를 담당한 조사관에 대한 문책 처분 절차를 밟고 있다.

당시 조사관이 작성한 하자 여부 판정서는 배기설비를 하자로 기재하지 않았고, 그 판정서가 그대로 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되면서 최종 하자 판정이 나지 않은 것이라고 공단은 설명했다.

최씨는 입주 4년이 지나서야 겨우 공식 하자 판정 통보를 받았지만, 그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기나긴 싸움으로 이미 3년이라는 하자심사신청 기간이 만료된 데다, 준공승인을 내준 구청은 배기설비에 대한 구체적 법규정이 없다며 나몰라라식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도구청 건축과 담당자는 "한국시설안전공단은 '주택법'의 배기설비 규정을 들어 민원인의 집을 하자로 판정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최씨의 집은 주택법 적용 대상이 아닌 건축법 적용을 받고, 건축법에는 배기설비에 관한 규칙이 없어 해당 건물의 법규 위반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30세대 이상의 아파트에 적용되는 주택법에는 배기설비 규칙이 있지만, 소형 아파트는 배기설비 관련 규정이 없는 건축법 적용을 받는다는 게 영도구청의 입장이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의 건축과 담당자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모 구청 건축과 담당자는 "배출구 없는 배기관을 만들어놓고 하자가 아니라는 것은 마치 물 안 내려가는 화장실 변기를 설치해놓고 문제없다는 것과 같다"면서 "건축법에는 배기설비에 대한 규정이 없지만, 문제의 건물은 '건축물의 설비 기준 등을 정하여 건축물의 안전·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건축법 1조를 어긴 것으로 얼마든지 하자로 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원 제기 4년 만에 하자 판정을 겨우 받았낸 최씨는 또다시 고단한 법정 싸움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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