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을 폐지해달라는 글이 등장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현직 교사.
초등학교 교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에서도 스승의 날 폐지를 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왜 일부 교사들은 자신들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기념일을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을까.
5년 경력의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은 당사자인 어린이와 어버이가 기분 좋은 날이지만 스승의 날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스승의 날이 마치 교사들을 검열하는 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매년 5월 15일이면 과거 학부모에게서 촌지를 주고 받던 시절처럼 악습을 행하는 교사가 없는지 마치 감시를 하듯 지켜보는 시선이 따갑다고 지적한다.
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실시 이후 이런 감시의 눈빛은 더욱 매서워졌다.
한 아이가 교사에게 음료수를 건넸을 경우, 학급의 모든 눈이 그 교사가 음료수를 받는 지, 안 받는 지에 쏠리는 식이다.
교육부도 혹시나 교사가 스승의 날 선물을 받아 문제가 될까 우려하며 일선 학교로 관련 지침을 보내고 있고 언론과 사회에서도 서늘한 관심을 보낸다.
A씨는 "스승의날이 오히려 교사를 가장 존중해주지 않는 날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물론 대부분 교사들도 은사에게 선물을 해야하는 부담스러운 문화가 점차 없어지는 것은 잘된 일이라고 보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실제로 요즘은 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해도 선생님에게 음료수 한 캔 건네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김영란법 준수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이 같은 문화가 서운하기보다는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스승의날이 오히려 교사에 대한 과도한 감시나 교사 스스로의 자기 검열을 부추겨 직업적인 자부심을 위축시킨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등장한 것이다.
폐지를 요구하는 이들은 특히 스승의날처럼 특정 직업군을 기리는 기념일이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기 때문에 유독 교사의 청렴성만 감시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교조 소속의 B교사는 "김영란법이 좋은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 직업군의 경우 이렇게 직업을 기념하는 날이 거의 없지 않냐. 요즘은 실제로 선물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이목이 집중되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B씨는 "경찰의 날의 경우 그들끼리 모여서 세미나를 열거나 문화 활동을 즐기지 않냐. 스승의 날도 교사의 날로 바꿔서 교사들끼리 직업 고민을 나누고 동기 부여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교 예산으로 학급당 3만원 정도의 돈을 배정하고 이 돈으로 학급 회장이 꽃을 사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스승의 날의 본래 취지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생님에게 줄 꽃을 학교에서 산 뒤 학생의 손에 쥐여준다는 점에서 교사들은 '엎드려 절받기' 같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스승의 날 폐지에 동의한다는 한 교사는 '교사들은 누구에게 존경받기를 위해서가 아닌, 참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교사들의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스승의 날을 없애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럼에도 스승을 공경하는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교사의 사회적 입지를 위해 스승의 날이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교권 추락이 심한 사례가 종종 등장하는 와중에 기념일 지정을 통해서라도 교사 존중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총 김재철 대변인은 "스승의 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선물로 보답해야 한다'는 사회 인식이 문제"라며 "감사의 뜻을 마음으로만 전하는 문화가 점차 정착되면 스승의 날은 그대로 둬도 상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