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과 체제보장을 맞바꾸는 이른바 '핵 담판'이 벌어질 장소로 싱가포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 모두 불편하지 않은, 중립적인 장소
미국의 대통령이 적국의 정상과 마주 앉은 사례는 대표적으로 닉슨 전 대통령이 1972년 중공을 전격 방문해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사례와,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6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정상회담을 한 사례가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닉슨 전 대통령처럼 적국의 수도로 직접 들어갈지 아니면 레이건 전 대통령처럼 제3국에서 회담을 할지에 관심이 쏠렸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제3국인 싱가포르를 선택해,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전철을 따르기로 했다.
싱가포르는 북한과도 수교를 맺고 있어 과거에도 미국과 북한의 비공개 회동이 수차례 이뤄진 바 있다.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른 나라보다는 방문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용기인 참매 1호기의 항속거리로도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전용기 편으로 중국 다롄을 방문해, 전용기를 활용한 해외 방문을 예고한 바있다.
미국도 해마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안보회의, 일명 '샹그릴라 대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싱가포르가 회담 장소로 낯설지 않다.
교통 편의성은 물론, 각종 회의시설이나 통신 인프라 등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언론의 취재환경 측면에서도 크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이 부담 없이 첫 만남을 갖는 곳으로 치자면 싱가포르만한 장소도 드물어 보인다.
◇ 회담 의제에서의 큰 합의나 진전 여부는 미지수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닉슨 전 대통령처럼 적국의 수도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극적인 장면을 내심 연출하고 싶어 한 것으로 전해져, 평양 회담은 최근까지도 그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회담이 결렬되거나 성과가 별로 없을 경우 오는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맞게 될 정치적 역풍을 생각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평양이 매우 위험천만한 도박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북한이 평양을 끝까지 관철시키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 등 주요의제와 관련해 무언가 회담의 성공을 보장할 만한 '회심의 카드'를 내놔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측면에서 회담 장소가 결국 싱가포르로 정해졌다는 것은, 북한이 미국에 좀 더 내놓기 보다는 차라리 평양 카드에서 한발 물러서는 대신 회담 의제에서 좀 더 실리를 취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싱가포르 낙점은 북미 양자가 아직 회담의 성공을 담보할 만큼의 합의나 논의의 진전을 이끌어낸 수준은 아니라는 쪽으로 모아진다.
따라서 싱가포르 회담이 한반도의 비핵화와 미국에 대한 핵위협 제거, 북한의 체제보장,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등 주요 이슈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에도 "북미 정상회담은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생각한다"며 연일 낙관론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도 조선중앙TV를 통해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미합중국 국무장관과 토의된 문제들에 대하여 만족한 합의를 보셨다"며 이례적으로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중이다.
때문에 모종의 합의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아직은 회담의 성공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양자는 막판 조율을 위해 심도깊은 논의에 들어간다. 이 기간 동안 북미 양자가 어느 수준까지 의제에 대한 합의에 이를지가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이에따라 북미 정상회담 전 오는 22일에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도 매우 중요하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