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까지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열어, 종전선언을 포함한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가려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큰 구상은 다음 기회로 미뤄지게 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북미 정상회담 판문점 개최에 대해 상당시간을 할애하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앞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밤(한국시간) 양 정상 취임 이후 가장 긴 1시간 15분간 통화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판문점 선언까지 나온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평화의집과 자유의집이 판문점 어느 곳에 위치해있는지, 또 북미 정상이 회담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지 등을 상세하게 물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1일 기자들과 만나 "남북 정상회담 다음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과 싱가포르를 놓고 얘기를 나눴다"며 "1순위는 판문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이 가장 많았던 것도 판문점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개최를 강력히 희망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통화 이틀 후인 30일(미국 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많은 국가들이 회담 장소로 고려되고 있지만 한국과 북한의 경계(on the border)에 있는 '평화의집', '자유의집'이 제3국보다 더 대표성 있고 중요하며 더 오래 기억될 장소가 아닐까"라는 글을 올렸다.
"(팔로어 여러분들에게) 그저 물어본 것(just asking)"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은 이미 판문점을 상당히 많이 기울어 있덨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3~4주 안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며 6월 초로 예상되던 회담이 5월 중순까지 앞당겨질 수 있을 정도로 '조기개최'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3~4일 뒤 급변했고 결국 싱가포르 개최가 최종 확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강력하게 원했지만 백악관 참모들이 정상회담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판문점 개최는 위험하다며 강력하게 반대했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에서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최종 결정된 시점은 5월 초였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6월12일 또는 13일 싱가포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을 강하게 원했다는 점, 회담 장소로 평양을 원했던 북한측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점, 또 다른 변동 가능성 등을 감안해 싱가포르 낙점 사실을 대통령을 비롯한 소수 인원만 공유했다.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인 석방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가 최종 결정됐다는 사실을 문 대통령에게 재차 확인해줬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판문점에서 개최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미안함이 느껴졌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배려를 해서 통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회담장소로 제3국인 스위스 제네바를 선호했다가 '도보다리 산책' 등 남북 정상회담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의미있게 개최된 것을 보고 판문점으로 결심을 굳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거듭된 참모들의 만류에 싱가포르로 최종 낙점하고 이에 대한 미안함을 문 대통령에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