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먼저' 김선아 "사람한테 제일 힘든 건 외로움"

[노컷 인터뷰] '키스 먼저 할까요' 안순진 역 김선아 ①

지난달 24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안순진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사진=굳피플 제공)
지난달 24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시한부인 손무한(감우성 분)과 그의 곁을 지키는 안순진(김선아 분)의 사랑을 그렸다. 하지만 '시한부' 하면 흔히 떠올리는 신파와는 거리가 멀었다.

감정을 최대한 끌어올려 눈물을 뽑아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담백하지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로맨스를 섬세하게 담아낸 것은 물론이고, 드라마 초반에는 40대 여성 스튜어디스가 처한 다양한 고충을 현실적으로 다뤄 주목받았다.

지난해 '품위있는 그녀'에서 한 번도 진정으로 사랑받지 못한, 비밀을 지닌 가정부 박복자 역으로 호평받았던 김선아는 '키스 먼저 할까요' 안순진 역마저 완벽 소화하면서 또다시 '인생 캐릭터를 갈아치웠다'는 찬사를 들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김선아의 라운드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는 어떤 질문을 던져도 곰곰이 생각해서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말 구석구석에서 '키스 먼저 할까요'를 향한 넘치는 사랑이 묻어나왔다.

◇ 대본 겉장만 보고 결정한 운명적 만남

김선아는 '시티홀' 신미래, '여인의 향기' 이연재 등 다양한 배역으로 사랑받았지만 역시 대표 캐릭터는 2005년작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 역이었다. 여자 나이 서른을 노처녀로 취급했던 시대에, 30대에 들어선 여성의 연애와 삶을 다룬 작품에서 김선아는 물 만난 고기와도 같은 연기를 선보였고 4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JTBC 드라마 자체최고 시청률(16회, 12.065%)을 쓰고 종영한 '품위있는 그녀'는 김선아의 새로운 대표작이 됐다. 김선아가 맡은 박복자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김용건과의 로맨스를 소화하는가 하면, '죽음'으로 시작되는 미스터리한 전개의 중심에 있었다. 김삼순-박복자는 김선아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사전제작 드라마여서 촬영과 방송까지 기간이 타 작품보다 길었던 '품위있는 그녀'는, 김선아에게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4~5개월 준비하고, 5개월 촬영하며 정을 많이 붙인 '품위있는 그녀'는 시작부터 끝까지 박복자의 내레이션이 비중 있게 나왔기에 더더욱 쉽게 놓이지 않았다고.

시간이 흘러도 잔상이 사라지지 않아 다른 작품을 찾고 있던 차에 우연히 만난 것이 바로 '키스 먼저 할까요'였다. 그는 '키스 먼저 할까요'란 작품을 처음 만난 날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김선아는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20년째 평직원으로 있어 늘 권고사직 압박에 시달리는 40대 스튜어디스 안순진 역을 맡았다. (사진='키스 먼저 할까요' 캡처)
"해가 막 지는, 더 많이 졌을 때인가. 저녁 6시 정도. 노을이 팍 지고 있고 불빛이 요렇게 있는데 (제목이) '키스 먼저 할까요'인 거죠. 너무 설레는 거예요, 갑자기. (웃음) 어머, 이게 뭐야? (가슴에 손을 얹고) 이 감정 뭐지? 인포메이션이 많지 않았는데 너무 설레는 거예요. 한 시간도 안 돼서 한다고 했어요. 배유미 작가님, 손정현 감독님 성함이랑 제목 적혀 있는 것밖엔 안 봤어요. (내용은) 집에 가서 보겠다고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속을 보지 않고 금세 정하다니, 너무 무모한 게 아니었을까. 김선아는 빠른 결정의 배경으로 '신뢰'를 들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 대본을 건네줬던 분이라서 그냥 믿고 갔다는 설명이다. 어쩌면 모험일 수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 됐다.

김선아는 또 하나의 신기한 우연을 전했다. 작품을 받기 며칠 전 우연히 손정현 감독 관련 글을 읽었다고. 그는 "뭔가가 엮이려니까 그랬나 보다"라며 "깜짝 놀랐다. (이 작품을) 하라는 계시인가? 싶었다. 나중에 그 얘기를 (감독에게) 했더니 정말인지 물으셨다"고 전했다.

◇ 김선아가 말하는 안순진과 박복자의 차이

인생 캐릭터라는 찬사를 안겨준 안순진 역은 사실 극중에서 상황이 딱히 좋지 않았다. 20년째 평직원으로 있는 탓에 권고사직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40대 승무원에다, 이혼한 전 남편이 남긴 빚을 갚느라 허덕이는 인생이었다.

김삼순, 박복자, 안순진 중 자신과 가장 비슷한 역할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김선아는 "세 사람을 붙여놓으면 좋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오히려 본인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배역은 따로 있었다.

김선아는 "얘는 좀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게 신미래와 여인의 향기 이연재다. 어쩌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저의 모습이 있다.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것 말고"라고 부연했다.

맡은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김선아는 "주변에서 어둡고 이상한 거 하지 말라고들 한다. 거칠어진다면서. 밝은 신미래 역을 할 때는 세상이 막 너무 즐거웠다. 작년에 복자 역을 할 때는 주변 사람들이 다 피해 다녔다"며 웃었다.

김선아는 시청자에게 오랫동안 각인될 캐릭터를 꾸준히 맡아 왔다. 왼쪽부터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 '품위있는 그녀'의 복자, '키스 먼저 할까요'의 순진 (사진=각 방송 캡처)
'품위있는 그녀' 종영 인터뷰 때도 박복자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깊은 연민을 지녔던 그는, 복자와 순진의 차이점을 차분하게 이야기해 나갔다.

"복자는 너무 안타까워요. 안쓰럽고. 애정과 애착이 가요. 결말 이런 걸 떠나서요. 저는 안순진이라는 사람보다는 복자라는 사람이 더 불쌍해요. (순진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잃은 경우잖아요. 복자는 어릴 때부터 아무도 손을 안 내밀어주고 외톨이였고요. 비교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약간 비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안됐어요.

순진이는 그래도 옆에서 생각해주고 같이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덜 외롭겠단 생각이 들어요. 사실 사람한테 제일 힘든 게 외로움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외로움이라는 게 손무한이라는 사람한테도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병이 아니었을까요. 일과 싸우고 집에 와도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요. 한 명인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용기없던 외로움이 스스로를 가둬버렸던 게 아닐까요.

남자도 여자도 일에 치이고 뭐에 치여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고립되는 시간이 많고요. 외로움이란 것과 싸우기 시작할 때 사람 병의 깊이는 알 수 없다고 봐요. 그래도 옆에서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순진이는 친구라도 찾아와주고 작은 행복을 누리잖아요. 누군가가 찾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 작품 얘기를 맘껏 할 수 있어 즐거웠던 시간

김선아의 말에 따르면 '품위있는 그녀' 박복자보다는 덜 기구하고 나름대로 행복하지만, 극중 안순진의 처지도 만만치 않았다. 빚만 떠안긴 전 남편이 있었고 다시 사랑이 찾아오긴 할까 싶은 상황에 있었다. 그때 운명처럼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손무한이었다.

한때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느덧 나이 들어 버린, 사라져 가는 것들에 집착하는 고독한 남자. 거기다 시한부 판정을 받기까지.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김선아가 안순진 그 자체였듯, 감우성 역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손무한이었다.

김선아는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감우성과 절절한 멜로를 선보였다. (사진='키스 먼저 할까요' 캡처)
김선아는 감우성과의 공통점을 슬쩍 알려줬다. 두 사람의 생일이 10월 1일로 같다는 점이었다. 제주도 촬영 때 서로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이때 감우성은 지금까지 생일이 똑같은 사람을 본 적 없다며 김선아에게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고 장난을 쳤다고. 그 후로 감우성은 곧잘 김선아에게 "아~ 그래서 우리가 잘 맞나 보다" 이야기를 곧잘 꺼냈다.

호흡을 물으니 "좋았던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더 구체적으로는 "되게 잘 맞았다". 김선아는 "작품에 관해 얘기를 되게 많이 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다"며 "(상대 배우라도) 할 얘기가 많지 않은데 작품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작품에) 관심이 많다는 거여서 그게 너무너무 좋았다"고 밝혔다.

작품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묻자, 기억이 잘 안 난단다. 사실 김선아는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제목 때문에 로맨틱코미디에 가깝다고 예측해, 처음에는 감을 잘 잡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것을 절대 부정적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물음표를 조금 가지고 오긴 했는데 배우들이 궁금한 걸 가지고 가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지막 회의 '열린 결말' 역시 예측하지는 못했으나 무척 만족해했다. "너무너무 좋다", "정말 좋았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마무리가 너무 좋았다"는 말이 연신 터져 나왔다.

(노컷 인터뷰 ② 김선아 "어른들은 뭘 다 잘할 것 같지만, 사실 서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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