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시도 구조했더니 "놔달라"…애먹는 경찰

경찰의 '생명 보호조치' 對 구조자의 '귀가 자기결정권'

양화대교 (사진=자료사진)
양화대교에서 누군가 자살을 하려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8일 새벽 출동한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 경찰관들은 구조한 50대 여성 A씨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왜 자살을 하려고 하시냐'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도 없이 "집으로 갈테니 보내 달라"는 말만 A씨가 되풀이하면서다.

A씨는 "자살 시도 사실을 남편과 자녀에게 절대 알리고 싶지 않다"고 완강히 버텼다.


경찰도 물러설 수 없었다. "홀로 돌려보내면 또다시 양화대교에 갈 거 아니냐"며 "가족에게 연락을 하라"고 놔주지 않았다.

결국 A씨는 함께 지내는 식구가 아닌 친오빠를 불렀다. 구조된 지 6시간이 지난 뒤였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4조 보호조치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경찰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에 대해 가족 등 연고자에게 사실을 알리고 인계해야 한다.

양화대교를 관할하는 홍익지구대에는 심심찮게 자살 의심 신고가 접수되지만, 현장에서 구조되더라도 가족에게 연락하길 꺼리는 경우가 있어 곤혹스럽다고 한다.

한 경찰관은 "자살시도를 알리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며 "연락처를 요구해도 입을 다물고 '나는 보호자가 없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생명 보호조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경찰, 그리고 귀가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자살시도자의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경찰은 보호자 인계나 보호시설에 맡기는 조치를 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세부 매뉴얼이 없어 개입 근거가 모호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우선 '경찰이 할 일'에 손을 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백석대 경찰학부 이건수 교수는 "사람 목숨을 보호하는 것과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 등을 비교해 가치를 따지면 생명이 더 중요해 보인다"며 "자살을 시도하다가 구조된 것은 곧 자살에 실패한 경우인데, 경찰 입장에선 보호하고 치료를 받게끔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같은 조치에 당사자가 극단적으로 반발할 땐 유보적 판단도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자살시도는 보호자나 관련자에게 사실을 알리는 게 원칙이지만 자살시도자가 이를 심하게 거부하는 경우엔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 자문을 구해 보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개인의 위험도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이 개인에 '지지적'인지 파악해 판단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도 '배려의 노하우'가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자살시도가 가정폭력과 연관됐을 경우엔 가족이 아닌 친구에게 인계하는 경우도 많다"며 "보호자에게 인계할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든가 보다. 마포대교를 산책하는데 위험해 보여서 데리고 있었다'는 식으로 돌려 전달하기도 한다"고 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