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신, 일본이 보고 배워 다시 일어났으면…"

<광장의 목소리 134일의 기록> 저자 다카키 노조무

-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 더 커져
- 1987년, 2016년 한국에서의 경험 꼭 전해야겠다 결심
- 2015년 자위대 해외 파병 반대 시위 불구 자민당 승리.. 충격적
- 일본에도 즐거운 시위 문화 생겼으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5월 4일 (금)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다카기 노조무 작가

◇ 정관용> 촛불의 힘으로 일궈낸 정권 교체. 다음 주면 문재인 정부 1주년이 되죠. 1700만 명 국민이 참가하면서도 평화적 시위를 벌여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었는데요. 당시에 그 134일간 펼쳐진 우리 촛불집회를 외국인의 시선에서 관찰해서 책을 펴낸 일본인 작가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벌써 한국에서 일어난 일,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이런 제목으로 책이 출간됐고 이번에 번역해서 한국말로도 책이 나왔네요.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해 봤습니다. 다카기 노조무 작가, 어서 오십시오.

◆ 다카기 노조무 > 안녕하세요.

◇ 정관용> 안녕하세요. 한국 말씀 잘하시네요.

◆ 다카기 노조무> 조금 많이 배웠습니다.

◇ 정관용> 언제부터 배우셨어요, 한국말을.

◆ 다카기 노조무> 1979년부터.

◇ 정관용> 그렇게 일찍? 어떤 계기로요?

◆ 다카기 노조무> 글쎄요, 제가 원래 아시아 쪽에 관심 있는 편이라서 처음에 중국어를 배웠었는데 그다음에 바로 그 79년이라고 하면 박정희 대통령 암살된 해 그다음 해에는 광주운동이 일어났던 거고요. 그런 와중에서 아무래도 한국에 대해서 제가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죠. 물론 그전에도 어떤 책을 통해서 한국에 관심이 있었지만요.

◇ 정관용> 그러면 한국에 와서 살면서 한국어를 배우셨어요.

◆ 다카기 노조무> 아니죠, 일본에서요.

◇ 정관용> 일본에서 그냥 공부하셨어요?

◆ 다카기 노조무> 그 당시 제가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별로 공부할 만한 장소는 없어서 좀 고생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이제 수시로 한국을 왔다갔다 하신 겁니까?

◆ 다카기 노조무> 제가 한국 왔다 갔다 하게 된 것은 80년대 들어가면서 아무래도 제가 관심 있다 보니까 관광도 하고 싶고 또 한국 문화에도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문화공연 같은 것도 보고 싶었고요.

◇ 정관용> 대표적인 지한파, 친한파이시군요.

◆ 다카기 노조무> 그렇게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 정관용> 1987년 6월항쟁 당시에도 한국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 다카기 노조무>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때는 또 그냥 우연히?

◆ 다카기 노조무> 그렇죠. 86년 연말에 제가 어학연수 차 여기 왔었어요. 처음에는 고려대학교에서 공부했고요. 6개월 후에는 연세대학교로 옮겼습니다.

◇ 정관용> 바로 그 연세대학교.

◆ 다카기 노조무> 바로 그 시기에.

◇ 정관용> 그럼 이한열 열사 영결식. 그런데도 참여하셨어요? 현장을 다 보셨군요? 그리고 이번 2016년 촛불집회도 현장에서 보셨고.

◆ 다카기 노조무> 맞습니다.

◇ 정관용> 그건 또 어떻게 보시게 됐습니까?

◆ 다카기 노조무> 이것도 제가 예상해서 온 것은 아니고요.

◇ 정관용> 이걸 다 예상해서 오셨다면 거의 쪽집게를 넘어 신의 수준인데요.

◆ 다카기 노조무> 그러니까 2016년 7월 말에 제가 아무래도 그동안 몇 번 한국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제 앞으로 다시 책을 쓰게 된 데는 역시 한국에 와서 생활을 하면서 자료수집도 할 수 있고 한국 사람한테 얼마든지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고 그런 환경에서 책을 쓰고 싶어서. 그래서 16년 여름에 여기 왔습니다.

◇ 정관용> 아예 그냥 그때부터 지금 쭉 한국에 살고 계신 거예요?

◆ 다카기 노조무> 네, 계속 그때부터는.

◇ 정관용> 그러시군요. 공교롭게도 87년 그 직전에 한국에 와서 그 현장을 보셨고 촛불 그 바로 직전에 또 오셔서 현장을 보셨고. 대단한 인연입니다.

◆ 다카기 노조무> 그러니까 진짜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이런 신기한 인연이 있을지. 그건 제가 평생 아무래도 한국과 연관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 정관용> 일본인의 시선에서 본 87년 서울과 2016년 촛불 서울의 모습이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 다카기 노조무> 이것은 한국분들 다 잘 아시다시피 87년 당시에는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에 거리에 나가서 데모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고요.

◇ 정관용> 최루탄 터지고.

다카키 노조모 작가 (사진=시사자키)

◆ 다카기 노조무> 그렇죠. 그러니까 그 6월 10일날 그때 국민대회를 열었을 때 그전에도 계속 학생들이 데모시위 같은 것은 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런 고려대학교나 연세대학교에서 계 속 공부를 했으니까 매일 다닐 때마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고요. 저절로 제가 학생들이 어떻게 움직이나 주목하게 됐죠. 그런데 바로 87년 6월 10일날 그때 성공회에서 처음에 집회를 열기로 돼 있었어요. 그때 저도 함께 참여해 보고 싶었는데 그때 그 뉴스를 보니까 경찰이 원천봉쇄가 돼서 그게 무산됐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생각을 했더니 연세대학교 그때는 연대에 있었습니다. 어떤 벽보가 나왔어요. 12시 가자, 롯데백화점 앞으로. 그래서 그걸 믿고 제가 갔었죠. 그런데 그때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어요. 백화점 앞에서 제가 뭔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 시청 쪽에서 오는 버스, 시내버스가 와서 백화점 앞에서 학생들이 창문을 열어서 손을, 팔을 내밀면서 호원철폐 독재타도 외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 시위가 시작됐죠. 그때 저도 완장하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경찰 최루탄에서 도망가려고 했는데 진짜 옆에서 제가 보니까 경찰이 무슨 곤봉 같은 막대기를 들고 때리는 장면도 봤고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됐고 대표적인 것이 박종철 군이었고 또 이한열 열사, 그 뒤에 이어지는 이석규 열사 같은 노동자의 희생도 있었고요. 그런 과정을 보니까 아무래도 목숨 걸고 해야 하는 행동. 87년 당시에는. 1987이라는 영화도 봤지만 진짜 그 현장에 있으면 진짜 무서웠어요.

◇ 정관용> 그런데 2016년은.

◆ 다카기 노조무> 2016년 이번에는 제가 그 10월 29일날 제1회 집회부터 계속 참가를 했었지만 어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평범한 시민의 모습이었죠. 그리고 경찰이 그것을 어떻게 탄압하려고 하는 것도 없었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진행됐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큰 차이인데 아마도 이번에 촛불집회를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분들 중에는 87년 그 사태를 겪어봤던 그런 분들이 많이 계셨을.

◇ 정관용> 많이 참여했죠.

◆ 다카기 노조무> 그분들이 얼마나 감회가 깊은지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 정관용> 이걸 책으로 써야 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됐어요?

◆ 다카기 노조무> 그러니까 아무래도 제가 87년 당시에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제가 글을 써서 그걸 전해 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글쓰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제게 모처럼 2번이나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것을 이번에야말로 꼭 전해 줘야 한다 하는 마음이 먼저 생겼고요.

◇ 정관용> 일본 사람들한테 전해 줘야 되겠다?

◆ 다카기 노조무> 그렇죠.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2015년도에 일본에서도 그러니까 아베 정권이 제일 추진하고 있던 자유대라는 군대를 해외로 파병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법률을. 그런데 그게 국회가 통과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한 1년 정도. 그 상황을 보니까 그때는 제가 일본에 있었죠. 그래서 그 상황을 보니까 87년 6월 생각났었습니다. 그런데 그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습니다.

◇ 정관용> 압승했죠.

◆ 다카기 노조무> 그래서 결국은 중의원, 참의원 양쪽에서 과반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앞으로 헌법 개정 같은 것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러니까 그렇게 일본 사람들 열심히 싸웠는데 그래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굉장히 저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것이 참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서 바로 제가 여기에 왔어요.

◇ 정관용> 한국에 왔고 촛불집회를 봤고.

◆ 다카기 노조무> 몇 달 후에는 촛불집회가 일어났는데 그걸 보면서 제가 바로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보고 배우고 다시 일어나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었죠.

◇ 정관용> 그래서 일본어판 제목이 한국에서 일어난 일,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군요. 일본에서도 이런 일 좀 해 봅시다, 그런 뜻이로군요. 한국의 시위 문화와 집회 문화와 일본의 집회 문화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 다카기 노조무> 그리고 이것도 일본에서 생각을 한다면 1960년대, 70년대.

◇ 정관용> 그때는 전공투..

◆ 다카기 노조무> 그렇죠. 그러니까 학생이 주축이 되어서 거기에 시민이 합류하는 식으로 해서 그러니까 그게 87년에 한국의 투쟁 양상하고 좀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갑자기 그 해에 수그러들어서 점점 분열되고 급진화되고 대중운동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그런 운동이 돼 버려서 그 이후에 거의 가두에 나가서 행동하는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 정관용> 일본 전체가?

◆ 다카기 노조무> 네, 일본 전체가요. 그런데 아무래도 6~70년대에 그런 투쟁을 지나서 시민운동단체 같은 것이 많이 생겼죠. 그러니까 어떤 광화문광장 같은 곳에 모여서 다 함께 뭘 하는 행동이 아니라 각 주제마다, 주제별로 또 지원마다 그런 운동이 확산됐습니다. 그래서 데모문화라는 것도 좀 국한된 규모가 작고요.

◇ 정관용> 작은 규모로 또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 다카기 노조무> 그렇죠.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다양하게. 그런데 한국은 아무래도 이번 촛불집회를 보니까 100만 명, 230만, 최대. 그런 규모의 집회에서 보이는 모습하고는 완전히 다르죠.

◇ 정관용>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모두가 하나가 돼서 결집하는 그런 게 일본에는 없었군요, 그동안에는.

◆ 다카기 노조무> 그러니까 노조가 주도하는 집회 같은 것은 어느 정도 있었고 그런 집회 안에서는 그래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재미있게 열려고 했던 그런 것들 있었지만 아무래도 다양하고 또 지속적으로 이번에 촛불집회의 그 모습을 보니까 현재 일본하고 양상이 다르다.

◇ 정관용>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최근 일본에서도 아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적 슬로건을 전면에 내건 시위들이 있다면서요. 그게 한국처럼 그렇게 대규모가 되지는 못하는군요.

◆ 다카기 노조무> 한국하고 비교를 하면 대규모가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볼 때는 굉장히 많이 그래도 모인 편이죠.

◇ 정관용> 요즘 어느 정도 모인답니까, 일본에서는?

◆ 다카기 노조무> 지난 4월 14일 그때 국회 앞에 모인 인원수가 3만 명?

◇ 정관용> 3만 명. 그럼 그건 일본 기준에서 볼 때는 대단한 거.

◆ 다카기 노조무> 굉장히 많이. 그것도 광화문광장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도시의 중심부에 있고요, 교통편도 좋고 그렇지만 국회 앞이라는 곳은 굉장히 불편합니다.

◇ 정관용> 일본 국회 앞이.

◆ 다카기 노조무> 가기가 어려워요.

◇ 정관용> 그래요?

◆ 다카기 노조무> 그리고 광장이 없죠. 거기에는 길만 도로만 있는 곳이기 때문에.

◇ 정관용> 모일 만한 장소도 그렇고.


◆ 다카기 노조무> 제한도 많이 돼 있고요. 그리고 일본 열도가 남북으로 3000km나 퍼져 있기 때문에 모두가 거기에 집중해서 모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죠. 그래도 2015년에 전쟁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 때부터는 젊은 층에서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됐고 그리고 그 젊은 층은 아무래도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도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의 문화라는 게 있어서 예를 들어서 랩을 부르면서 군사적인 내용을 담아서 그런 것도 점점 보이기 시작됐네요.

◇ 정관용> 저희는 대규모 집회하면 노래를 뺄 수가 없거든요. 일본은 노래를 안 불렀군요, 그동안.

◆ 다카기 노조무>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굉장히 진지하게.

◇ 정관용> 그냥 모여서 누가 연설하고 구호나 외치고. 노래 같은 거 같이 하지 않고.

◆ 다카기 노조무> 나중에 뒷풀이할 때는 그런 것도 있었죠.

◇ 정관용> 소위 말하면 민중가요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운동가요 이런 거, 그런 거 일본에도 있지 않나요?

◆ 다카기 노조무> 그것은 주로 옛날에 6~70년대에 투쟁가. 그래서 예를 들어서 노동가라든가 인터내셔널이라든가 국제노동가 그런 식의 노래가 대부분이었죠. 그러니까 스스로 만들어서 그 분위기에 맞게끔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서 노래를 만드는 작업은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일본이 그런 어떤 민주운동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한테 배워야 되겠네요, 여러 가지.

◆ 다카기 노조무>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즐거운 시위문화를 만들면 좋겠어요.


◇ 정관용> 한국에서 낸 책에는 지금 광장의 목소리 134일의 기록 이런 제목을 붙이셨는데 일본에서 펴낸 ‘한국에서 일어난 일,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일본 대중들이 좀 많이 사서 본답니까?

◆ 다카기 노조무>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요. 아직까지는. 워낙 펴낸 출판사가 약간 좀 작은 출판사다 보니까 선전 같은 것도 많이 못해서 그런지. 제가 그전에 냈던 책들은 그래도 큰 신문에서 평이 나오고 호응이 좋았습니다.

◇ 정관용> 요사이 지금 남북한 관계와 동북아 정세가 몇 달 사이에 급변하고 있잖아요. 그건 어떻게 보고 계세요?

◆ 다카기 노조무> 그러니까 그것도 제가 놀랐습니다. 일단 직접적인 계기는 평창올림픽 개최하는 데 있었죠. 그러니까 그 전에 바로 그 작년 겨울 때까지만 해도.

◇ 정관용> 전쟁날 뻔 했었죠.

◆ 다카기 노조무> 그러니까 일본에서도 자꾸 그런 선전을 했었고요. 저한테도 전쟁 일어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빨리 돌아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전쟁이 일어나도 끝까지 여기서 버티겠다 그렇게 얘기를 했지만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계속 우호적이고 평화로운 그런 방향으로 바뀌었죠. 일본 쪽에서는 그걸 보는 시각이 아직까지도 한국이 진짜 한반도에 평화가 오고 통일이 되는 것을 바라는 시각에서가 아니라 뭔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국가적 이익에 맞는 것만 골라서 그걸 추진하려고 하는 그런 것이 엿보여서.

◇ 정관용> 일본 현 정권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는 걸 좋아하죠?

◆ 다카기 노조무> 그렇죠. 그러니까 작년에 중의원 선거가 끝나고 압승했습니다, 다시. 그때 지금 지금 재무장관 겸 부총리 아소 다로 씨가 아주 솔직하게 이번에 우리 승리했던 것은 김정은 씨 덕분이다,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 정관용> 지금도 일본 정권은 그런 시각으로 여전히 한반도를 보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러다 일본만 빠지려면 어떡하려고 그럽니까?

◆ 다카기 노조무> 그것은 뭐 정권 쪽의 이야기이고요. 그렇다고 일본 국민 전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남북회담 때도 역의 대합실에서 TV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 모였었죠. 그런 분들 중에는 눈물 흘리는 분도 계셨고 박수 치고. 그런 걸 볼 때에 아무래도 이것은 국민들이 원하는 일이고 그러니까 일본 사람도 일본 정부도 그러한 사람들의, 국민들의 소원이 뭐냐 하는 것을 잘 생각해서.

◇ 정관용> 읽어야죠.

◆ 다카기 노조무> 그것에 호응하도록 노력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한국에 이제 계속 계실 건가요?

◆ 다카기 노조무> 있고 싶습니다.

◇ 정관용> 더 좋은 작품 펴내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다카기 노조무> 감사합니다.

◇ 정관용> 오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다카기 노조무> 감사합니다.

◇ 정관용> 우리의 촛불혁명을 일본에 수출하고 계신 작가 다카기 노조무 씨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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