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청장은 지난달 30일 '관세행정 혁신T/F' 위원장과 민간위원을 이끌고 인천공항을 직접 찾아 인천세관 간부간담회와 현장점검을 진행했다.
이후 김 청장은 기자들과 만나 "밀수와 관련된 부분은 어떤 부분이든 살펴볼 예정"이라며 "문제가 있다면 성역없이 수사해 꼭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김 청장은 이 자리에서 '소환조사 예상 대상'으로 조양호 한진 회장의 아내인 이명희 이사장과 조현아, 현민 자매만 지목했을 뿐, 유독 조 회장은 소환 대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김 청장은 "현재로서는 문제되는 3명을 생각하고 있고, 조사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명희 이사장과 조현아·현민 자매냐는 질문에는 "3명이 (소환해 조사할) 내용이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미 언론을 통해 조 회장이 한 병당 시가 수십만원에 이르는 고급 양주 수십 병을 일등석 옷장에 숨겨 직접 밀반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더구나 조 회장이 이 중 일부를 관세청 직원 회식에 제공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는데, 정작 조 회장만은 소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청장이 미리 나서 선을 그은 셈이다.
이뿐 아니라 공항 상주직원의 업무용 전용통로가 탈세 전용 창구로 사용됐단 지적에 대해서도 김 청장은 '큰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청장은 "직원 상주 통로는 공항공사 보안요원이 (검색)하는데 그 부분이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공항공사 직원은 안전에 중점을 두고, 관세청은 밀수를 우선해서 보니까 서로 보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이 직접 지적한대로 이 곳에는 인력 여건으로 관세청 직원 없이 공항공사 보안요원이 통로내 보안을 위해 배치됐을 뿐이어서, 부피가 작고 휴대가 가능한 물품이라면 얼마든지 개인 물품으로 위장해 반입할 수 있다.
만약 현재 제기되는 의혹처럼 한진그룹이 조직적으로 직원들을 대거 동원해 밀수를 벌였다면 상주직원 통로는 현재 세관 감시망의 '개구멍'이나 다름없다.
관세청 역시 한진그룹의 주요 밀수입 루트 중 하나로 상주직원통를 지목하고 보안검색대 근무자와 대한항공 인천공항 지점 관계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중이다.
결국 김 청장이 한진그룹 및 총수 일가의 밀수 의혹에는 한점 의혹없이 엄정한 수사를 펼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공교롭게도 세관 당국이 관련된 지점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셈이다.
이에 대해 관세청 관계자는 "양주를 포함해 한진그룹의 모든 탈세 의혹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며 "다만 양주를 관세청 직원의 회식에 제공해다는 의혹은 시점과 장소, 인원 등 관련 정보가 특정되지 않아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전세계적으로 상주직원 통로는 관세 관계자가 아닌 보안요원만 상주하고 있고, 엑스레이 검색대를 갖추고 기본적인 소지품 검사도 벌이고 있다"며 "다만 보안요원들은 관세행정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져 관련 검색이 잘 이뤄지지 못한다는 우려를 지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청장님의 발언은 현재 상주직원 통로의 검색시스템에 구조적인 문제로 볼만큼 큰 문제는 없다는 얘기"라며 "현재 제기되는 의혹대로라면 일부 직원이 밀수를 눈 감아줬다는 얘기인데, 시스템이 잘 갖춰져도 개인의 일탈을 다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최근 관세청은 한진그룹과 총수 일가를 상대로 3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공범'이 '셀프 수사'를 벌인다는 냉소 어린 반응은 끊이지 않고 있다.
만약 한진그룹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인 대규모 밀수 행각을 벌였다면 그 배경에는 인천세관을 필두로 한 세관 당국 직원들의 유착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상식적인 추론 탓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관세청은 '충성맹세' 파문 등 면세점 특허비리에 연루된 불명예를 안은 바 있다.
외부인사일 뿐더러 사상 첫 검사 출신 관세청장을 임명한 이유 역시 관세청의 강도 높은 개혁을 기대했기 때문일 터이다.
따라서 김 청장이 '안으로 굽는' 수사가 아닌, 그 어느 때보다 매서운 수사와 내부 감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