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는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피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구금했다면 당시 긴급조치가 유효한 법령이었기 때문에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지는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흠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지난 2일 검찰이 서울고법의 재심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재심 인용결정 재항고 사건에서 검찰의 항고를 기각하고 재심 결정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는 헌법상 영장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며 헌법 제12조3항 영장주의는 강제처분의 남용으로부터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긴급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동안 수사기관이 긴급조치에 따라 영장 없는 체포·감금을 했다면 법체계상 곧바로 직무범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경우에도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긴급조치 자체가 위헌이라면 결국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반해 영장 없는 체포나 구금한 것이고 이에 따른 국민의 기본권 침해 결과는 수사기관이 직무범죄를 저지른 경우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형식상 존재하는 당시 긴급조치에 따른 행위라도 긴급조치가 원시적으로 위헌이라면 그 수사에 기초한 공소제기에 따른 유죄 확정판결은 수사기관이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를 범한 경우와 같은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재심 결정이 옳다고 판단했다.
최모씨는 1979년 7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영장 없이 체포돼 9일 동안 구금상태서 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최씨를 긴급조치 위반죄 혐의와 함께 반공법위반과 사기,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씨는 항소심 도중 긴급조치 9호가 해제돼 긴급조치 위반죄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받고 이후 확정됐다.
이후 대법원은 2013년 4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사망한 최씨를 대신해 아들이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 서울고법이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자 검찰은 "경찰의 행위는 당시의 유효한 법령에 따른 것일 뿐 직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므로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수단인 영장주의를 위반한 경우는 당시 유효한 법령이 있어 비록 불법체포·감금죄로 인정할 수 없더라도 그와 유사한 하자로 봐서 재심 사유로 봐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