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이후 대북 제재 해제 국면 대비
김정은, 2016년 노동당 제7차 당대회때 제시한 경제정책 재조명
"대외경제관계 확대 발전…선진기술 받아들여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다른 나라 선진과학기술성과 우리 실정에 맞게 제때에 받아들여야"
"희토류 광물 등 풍부한 자원과 기술로 세계적인 패권을 쥘 수 있는 경제분야 개척"
대미 관계개선 토대로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 의지로 평가…1978년 중국 3중전회 개혁 개방 노선과 흡사
1일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30일 노동당의 새 전략노선을 실천하기 위해 당·국가·경제·무력기관 간부 연석회의를 개최해 "사회주의 건설의 더 높은 목표를 앞당겨 점령하자"고 결의했다.
노동신문은 또 이날 장문의 사설을 통해 "전체 근로자들이여, 모두 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결정 관철에 총매진하여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대비약을 일으켜나가자"고 촉구했다.
북한은 지난달 20일 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기존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의 완성을 선포하고 앞으로는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로 전략 노선을 수정했다.
또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8일 북한 영사관이 단둥에 상주하는 무역대표들과 무역일꾼들을 대상으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선전했고,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고 나면 경제 제재는 곧 풀리고 북한은 곧 무역 강국이 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2007년 10·4 공동선언에 명시됐던 경제협력 사업들을 다시 추진하기로 합의한 데다 북미 정상간 비핵화 담판에서 성과가 있을 경우 대북제재가 해제될 것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경제 재건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경제 건설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와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016년 5월에 열린 7차 당 대회 때 제시한 경제 정책 방향들이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 3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기본정신은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고 (중략) 당 제7차 대회가 제시한 사회주의 건설의 더 높은 목표를 앞당겨 점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7차 당대회 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강국을 건설해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며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했다.
또 "대외경제관계를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며 "무역구조를 개선하고 합영 합작을 실리있게 조직해 선진기술을 받아들이고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과학기술력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며 사회발전의 강력한 추동력"이라며 "다른 나라의 선진과학기술성과들을 우리 실정에 맞게 제때에 받아들이도록 할 것"이라고도 했다.
선진국들과의 교류 확대를 강조한 대목들이다.
특히 "경제개발구들에 유리한 투자환경과 조건을 보장해 운영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마그네사이트와 흑연, 규석과 희토류 광물을 비롯해 우리나라(북한)에 풍부한 자원과 우리의 기술로 세계적인 패권을 쥘 수 있는 경제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힘을 넣을 것"이라는 점을 특별히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매장량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희토류 자원 개발을 통해 경제 강국 건설의 기초를 다지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는 또 "전력공업부문에서 발전소들의 불비한 생산공정과 시설들을 정비보강하고 기술개건을 다그쳐 발전설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적인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연이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대북 제재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면서 김 위원장의 이같은 구상은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담은 자료를 전달했는데, 여기에는 남·북·러 삼각 에너지 협력과 발전소 협력 방안이 포함돼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강조한 노후 발전소 보강 문제를 남측이 해결해줄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짚어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의 종언을 고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으로 전략적 방향을 수정한 것은 남한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끌어 낸 이후까지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북 제재 국면이 지속되는 한 경제발전의 기회를 갖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미 관계 정상화의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이 김정은의 목표인 것이다.
이는 지난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회 전체회의에서 채택된 개혁 개방 노선과 흡사하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당시 덩샤오핑 지도 체제아래에서 개최된 11기 3중 전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패권주의를 반대하는 일관된 노선에서 세계 각국과의 우호 관계를 발전시켰고 그에 따른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전제하면서 "중·일 평화 우호 조약을 체결하고 중·미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마무리해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력갱생의 토대위에서 세계 각국과 대등한 경제 협력을 추구하며 세계적인 기술과 선진 설비를 받아들여 최신 과학 기술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한다"며 개혁 개방 노선을 천명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9년 1월 등소평은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포드 자동차와 보잉사 등 주요 기업체를 돌아보며 서방의 투자를 독려했다.
남한과는 화해 협력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협상을 앞두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지금의 북한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베이징대 역사학과 김동길 교수는 "북한은 개혁개방 정책을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 왔다"며 "그러나 국제 제재로 인해 맞장구를 쳐주지 않은 면이 있고, 그래서 실질적인 효과가 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길 교수는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좋은 결과가 나오면 중국식 개혁개방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개혁개방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상대 박종철 교수도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노선은 등소평의 개혁 개방 노선을 연상시키고 있다"며 "김 위원장 입장에서 비핵화 프로세스와 맞물려 평화협정 체결이 이뤄지면 미국을 비롯해 한국, 중국 등의 투자와 경제협력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