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회식자리에서 "살이 왜 이리 쪘느냐. 운동 좀 해야겠다"라며 김씨를 타박한 과장은 반강제로 김씨를 자신의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시켜 새벽마다 불러냈다.
전날 야근이나 컨디션 때문에 쉬고 싶다고 말해도 과장은 "그렇게 잠이 많으니 살이 찌는 거다. 너 안 오면 짝이 안 맞으니 잔소리 말고 빨리 오라"며 되레 역정을 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아침 운동 좋은 건 누구나 알지만 억지로 하는 운동이 즐거울 리 있겠느냐"라며 "직원도 많지 않은 회사에서 싫은 소리가 나오면 직급이 낮은 내가 손해를 볼까 봐 억지로 참고 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성남시의 한 IT 회사 신입사원 최모(32)씨는 인사를 제대로 안 한다며 폭언을 하는 선배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씨의 회사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든다며 직원들 간에 직급 대신 '○○님'처럼 이름을 부르도록 하고 있지만, 달라진 건 호칭뿐 연공서열에 따라 상하관계가 결정되는 이른바 '군대식 문화'는 여전하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최씨는 "신입 사원 중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다 보니 선배들이 '나이로 대접받을 생각 말라'며 따로 불러내 폭언을 하곤 한다"라며 "아무리 편한 호칭을 써도 조직원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오너 일가의 폭언과 갑질이 줄줄이 폭로되며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지만, 근로자들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도 이에 못지않게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은 최근 5년간 신체·정신적 폭력이나 따돌림, 강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 이상이 2회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고,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한 직장인도 10명 중 1명에 달했다.
종류별로 보면 폭언과 강요 등 정신적인 공격으로 인한 괴롭힘이 24.7%로 가장 많았고, 업무에서 소외시키거나 단순 대화조차 하지 않는 등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한 피해자도 16.1%나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렵게 구한 직장을 제 발로 떠나는 새내기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통계청이 최근 3년간 전국 사업장 전체를 대상으로 퇴사인력을 조사한 결과 입사 1년 차 신입 직원(이직 1년 차 경력사원 포함) 중 퇴사자는 10만7천306명으로 같은 기간 전체 퇴사자의 37.6%를 차지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9.1%는 퇴사 이유로 조직·직무적응 실패를 꼽아 직장 내 적응 문제가 퇴사 결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신입 직원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 조직 내 약자들은 상사들의 폭언과 괴롭힘에 쉽게 노출되고 이를 견딜 수 있는 저항력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라며 "피해자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회사 밖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사업주가 괴롭힘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과 교육 프로그램을 확립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