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에서 아무 직책이 없는 이 이사장이 비서실을 사적으로 활용하고, 물건값이나 운송비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한 정황이 담겨 있어 수사 당국의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25일 익명의 대한항공 직원이 공개한 이메일에 따르면 2009년 대한항공 비서실은 한 해외지점 지점장에게 "사모님 지시사항 전달"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발신인이 비서실 코드인 'DYS'로 된 이 이메일에는 "지점장님 안녕하십니까? 사모님께서 아래와 같이 지시하셨습니다"라며 "(물품 이름) 제일 좋은 것 2개를 구매해서 보낼 것", "제품 카탈로그를 보낼 것"이라고 적혔다.
이어 "유선상으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비서실 (이름) 드림"이라고 돼 있다.
대한항공 비서실이 나서서 이 이사장이 지시한 물건을 사 보내라는 공문을 보낸 셈이다.
이날 대한항공 직원 등 1천명이 참여한 카카오톡 익명 제보방에도 이와 관련한 제보가 올라왔다.
제보자는 "사모님이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DYS에서 해외 지점장들에게 이메일을 쫙 돌린다"며 "그러면 현지에서 서베이(조사)해 사진을 첨부해 보고하고, 지점장이 직접 가서 회사 카드로 긁고, 핸드캐리(사람이 직접 운반)가 안되면 사내정산 빌(영수증)을 끊어 보낸다"고 증언했다.
비서실 동원 말고도 물건 구매 비용과 항공 운송비를 제대로 정산했는지, 관세를 제대로 내고 들여왔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제보자는 덧붙였다.
이날 공개된 또 다른 이메일은 2008년 발송된 것으로, 제목은 'KKIP ITEM(아이템·물건) H/D 관련 재강조(지시)'다.
'KKIP'(K Koreanair VIP)는 조양호 회장 등 총수 일가를 지칭하는 코드이고, 'H/D'는 핸들링(Handing)의 약자로 업무수행을 뜻하는 말이다.
이 이메일은 국내외 지점장에게 발송한 것으로 "KKIP 아이템 운송 시 핸들링 관련 유의사항을 재강조하니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업무에 만전을 기하라"고 강조했다.
메일을 자세히 보면 "메일 내용에 최고 경영층 명기 금지 → 가능한 DYS ITEM으로 표시", "운송 ITEM에 대한 상세한 기술 지양하고 필요한 경우 유선으로 실시", "ITEM H/D 공항 지점장이 직접 F/U(팔로우업·챙기기)" 등 지침이 있다.
총수 일가의 해외 물품 구입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보안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이날 공개된 두 이메일과 제보 등을 종합하면 조 회장 일가가 9∼10년 전에도 해외지점을 통해 물건을 구매해 국내로 들여왔고, 이 과정에서 비서실 등 대한항공 조직을 활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해당 지점이 어느 곳인지, 관련 아이템이 무엇인지 등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