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극장 독과점 해결 없으면 관객 불편은 진행형"

[영화값 1만 1천원 시대 ③] 멀티플렉스들 독과점, 견제도 경쟁도 안 통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CGV 명동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J CGV 영화 관람료 인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A 씨는 출근할 때마다 B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구매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카페의 아메리카노 가격이 500원 상승했다. 가격이 상승했음에도 커피맛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을 느낀 A 씨는 앞으로 조금 더 걸어야 하지만 가격이 500원 저렴한 개인 운영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구매하기로 했다.

A 씨는 음료 산업, 그 중에서도 카페 산업에서 소비자에 해당한다. 특정 프랜차이즈 카페 업체가 아메리카노 가격을 올렸을 때, A 씨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해당 카페를 계속 이용하든가, 아니면 이보다 아메리카노 가격이 저렴한 카페로 가든가. 그러나 극장 산업에서는 이 같은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2016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곽상도 의원은 국내 극장 산업 매출 중 3대 멀티플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96%를 넘겼다고 밝혔다. 극장 산업에 있어서 3대 멀티플렉스의 절대적인 독과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는 꾸준히 극장 산업에서 3대 멀티플렉스 독과점 현상을 비판해왔다. 이윤을 내야 하는 사기업이 서비스나 상품의 가격을 인상시킬 자유는 당연히 있지만 극장 산업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에 그 양상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특정 대기업 독과점 산업이라는 점에서 극장과 통신은 아주 유사하다. 지금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서로 소비자들을 위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기보다는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람료 가격과 팝콘 가격이 동일하고, 한 기업이 가격을 상승시키면 다른 기업들도 연달아 올린다. 한 기업이 가격을 올릴 때, 다른 기업은 가격 경쟁력이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일반적 구조가 아니라 독과점 구조이지 않느냐. 이런 구조의 문제가 있는 이상 뭘 어떻게 이야기해도 다른 산업들과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가 생각하는 서비스의 개선은 극장이 말하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최신 설비나 좌석을 갖추는데 몰두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커피값이 비싸면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다른 가게를 찾아갈 수 있지만 영화관은 아니다. 소비자들에게는 이들 3대 멀티플렉스 외에 다른 선택권이 거의 없다"면서 "그렇다면 3대 멀티플렉스들은 시설의 보수나 발전을 생각하기 보다는 이미 불만이 나온 광고 상영, 매점 가격, 대형 상업영화에 대한 스크린 배정 등의 문제를 먼저 개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진정으로 소비자들의 편의를 생각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 독과점 재편된 영화 시장, 소비자 힘만으로는 해결 불가

연간 국민 1명이 영화 4편을 볼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영화는 '문화 생활'을 넘어선 하나의 '생활 문화'로 정착했다. 전세계적으로 국민이 이렇게 영화를 잦은 빈도로 관람하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정도다. 현재 약 2억 명의 관객이 보장된 시장에서 과연 3대 멀티플렉스는 공정한 경쟁과 발전적 성장을 하고 있는가.

특정 기업들의 시장 독과점 현상이 산업 생태계를 망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내에서 누구도 이들 기업을 견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은 소비자보다 '갑'의 위치에 서게 되고, 기업의 결정이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소비자가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당연히 사기업의 자율적인 기업 윤리에 모든 것을 맡기기는 어렵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원승환 부관장은 "독과점이 일어나기 전까지 기업들은 경쟁자를 없애기 위해 가격을 저렴하게 만들고, 혜택을 많이 준다. 그러다 경쟁자가 다 죽고 소수만 남으면 자신들이 돈을 벌기 위해 움직인다"면서 "실제 한국 영화 관객들이 겪는 문제들이 대부분 독과점 구조 속 견제가 불가능해서 생긴다. 가격 인상 문제, 비싼 가격의 매점 스낵, 상영 시작 이후의 광고 시청, 스크린 배정 문제 모두 다른 사업장, 즉 이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극장이 없으니 감내해야 되는 것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독과점 상황을 소비자의 힘만으로 바꾸기는 역부족이다. 정부 당국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되지만, 현재 기본적인 조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원 대표는 "이미 독과점 시장으로 재편됐기 때문에 소비자 선택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것들은 바뀌기 어렵다"면서 "결국 정부 당국이 불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 기업을 견제해야 하는데 광고 상영 문제는 물론이고, 특정 대형 영화들의 스크린 독점 배정 문제 등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영화관람료 1천원 인상은 지금도 멀티플렉스 업체들의 수익이 국내 시장에 집중돼 있음을 방증한다. 영화관람료를 포함해 국내에서 영화관 사업으로 벌어들인 매출로 다시 해외에서 사업 규모를 늘려가는 형태인 셈이다.

'박스오피스의 경제학'을 집필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윤지 박사는 "2017년 기준 여전히 국내 극장매출은 75%에 달한다. 영화 산업은 해외로의 진출이 쉽지 않으니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국내 시장에 의존해 비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 영화 시장은 포화 상태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콘텐츠든 극장이든 영화 시장 전체가 국내보다 해외가 주된 수익처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제작사들과의 부율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조언도 건넸다.

김 박사는 "이 기회에 부율에 다시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율대로 계속 간다면 대기업이 수익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 올리는 것 아니냐는 여론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만약 가격을 올렸을 때, 영화 제작하는 이들에게 그 수익이 더 간다고 생각하면 '대기업 극장들이 다 먹는다'는 식의 저항은 없으리라 본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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