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경제 병진노선 수정 공식화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 정당화
- 비핵화는 시간끌기 아니라 전략적 선택임을 과시
-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와는 온도차, '핵군축' 요구 가능성 배제못해
이와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폐기하고 군을 포함한 전 사회적 자원을 경제건설에 총력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집권이후 핵 무력 완성에 집중해온 김정은 위원장이 핵심 전략 노선을 수정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대내용과 대외용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오는 27일 개최될 남북정상회담과 5월말~6월초에 개최될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전에 북한의 관료들과 주민들에게 예방주사를 놓는 성격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실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기를 천명하면서 '핵 무력을 이미 완성'했기 때문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리고 비핵화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은 것도 내부적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 주변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향한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국제정치구도에서 극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 당 병진노선의 결실"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때 전쟁위기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대화 분위기로 극적으로 반전된 것은 병진노선의 결과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시대적 소명을 다한 만큼 새로운 전략 노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분석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 당국이 대내적으로는 절제되고 대외적으로는 파격적인 '핵'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내부 동요를 의식해 비핵화 표현은 자제하고 핵무력 완성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당의 핵심 정책을 결정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이 공식적으로 수정됨에 따라 남한은 물론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는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김 위원장은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해 북한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의정 보고에서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전체 인민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경제건설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국제환경 조성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를 통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 이유를 주민들에게 정당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와함께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 내 군부의 역할이 상당부분 축소될 것임을 시사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은 결정서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에서 당 및 근로단체 조직들, 정권기관, 법기관, 무력기관들의 역할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건설을 위해 기존 경제단위 뿐 아니라 모든 자원의 총력 동원을 촉구하면서 '무력기관'도 나서야 한다는 것으로,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군대의 여력을 경제건설에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대외적으로는 잇따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가 단순한 시간끌기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전원위원회 결정서에서 핵시험장 폐기 의지를 밝히면서 '핵시험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필요할 경우 핵 동결 조치를 국제사회로부터 검증받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국제 핵레짐에서 '투명성 담보'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사찰을 통한 검증을 의미한다"며 "이는 북한의 핵무기화 기술수준 공개를 전제하는 것으로 과감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려는 포석으로도 보인다.
이와함께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방침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은 과감한 비핵화 조치의 보상으로 대북 제재 해제와 함께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 등 국제사회에 미리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북한은 핵실험 중지와 핵실험장 폐기로 '미래 핵'에 대한 동결 의지는 분명히 밝혔지만 기존에 개발한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또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담판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뿐 아니라 미국의 핵무기 감축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관련해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대담한 핵폐기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핵폐기와는 여전히 온도차가 존재한다"며 "핵 실험장 폐기에 따른 사찰 수용이나 그 수준에 대해 북한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