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악순환 뒤엔 '거수기 대한항공 이사회'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조현아씨의 땅콩회항, 동생인 조현민씨의 물벼락 갑질, 어머니 이명희씨의 갑질 의혹, 대한항공 항공기를 이용한 고가물품 무단반입 등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갑질.반칙 행진은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와 마비된 감사기능, 사내 견제세력의 부재에서 비롯돼, 갑질과 사과, 퇴출, 복귀, 또다른 갑질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조현아씨는 지난달 29일 한진그룹 호텔사업을 총괄하는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의 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갑질로 실정법을 위반한 죄로 단죄를 받았지만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킨데 대한 회사 차원의 처벌은 없었다. 오히려 3년3개월이 지나자 슬그머니 회사 경영진에 다시 합류시켰다.

오너의 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당시 지주회사인 한질칼, 칼호텔네트워크 등 관련 회사의 이사회는 물론, 어디에서도 반대 목소리나 문제제기가 나오지 않았다. 조양호 회장 일가가 한진그룹의 설립자지만 회사의 소유자는 아니다.

◆ 'NO' 외칠 이사가 없다

주식회사 대한항공은 조씨일가의 주식 지분율이 33.34%, 지주사인 한진칼은 28.9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한항공 직원이나 국내외 소액주주 지분이다.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엄격히 책임을 묻는 것이 자본주의 회사의 기본 생리이자 작동원리다.

하지만 국내 대다수 재벌기업들은 자그만 지분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그 책임에는 둔감한 것이 현실이고 대한항공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가장 큰 이유는 회사내부에서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주권력을 견제할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 석태수 사장 등 3명의 사내이사와 변호사 등 3명의 사외이사, 대한항공은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5명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 사내이사들은 대한항공 사주나 직원 출신 임원으로 사주의 의중을 거스르는게 불가능하다.

(사진=금융감독원 공시 자료)

사주나 사내이사의 전횡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사외이사들도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룹의 주력인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사외이사 8명을 직업분포로 나눠보면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4명, 법무법인 고문 2명, 대학교수 2명으로 항공산업의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고 그나마 5명은 임명된 지 갓 1년된 신참이사로 회사사정에 깜깜하다.

대한항공 노조관계자는 18일 이사회 문제점과 관련해 "대주주가 어떤 결정을 하면 반대할 사람이 없다. 전형적인 재벌기업의 구조다. 외부에서 영입된 교수나 변호사 출신의 사외이사들은 주요의사결정에 대해 별 역할을 못하고 사주가 한 마디하면 꼼짝 못한다"며 "사내이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문제를 일으킨 조현아, 조현민씨 자매나 안방정치하는 분은 회사내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사고나 칠바엔 물러나 주는게 맞지만 노조로서도 (사측이)인사로 탄압하고 정보가 철저히 차단돼 있어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내부상황을 설명했다.


◆ 특권의식에 고가품 비밀반입 항공안전은 뒷전

한진그룹 사주일가가 항공기를 이용해 고가품을 무단으로 가져 들어온 의혹 역시 갑질과 똑같이 '회사가 내 것'이란 근거없는 특권의식에서 비롯됐다.

관세포탈의 문제를 넘어 비행기에 실리는 물품들은 승객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여서 아무리 철저하게 검사를 해도 지나치지 않고, 국민들이 검색의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대한항공 사주일가가 고가품을 들여오는 과정을 들여다 보면 정말 가관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조종사 K씨는 "해외지점이 전세계에 있고 여기 근무하는 직원들이 사주 가족 에스코트를 잘하면 승승장구하는 거고 못하면 바로 좌천되거든요 그래서 열과성을 다해요. 쇼핑다니다가 좋은 거 있으면 사서 지점 직원이 날라요"라고 말했다.

이어 "공항지점 직원들은 공항에 상주하니까 공항마다 직원 드나드는 전용통로가 따로 있고 맨날 보는 얼굴인데 통과 때 눈감아 주고 비행기까지 실어놓으면 사무장이 (받으러 온)직원에게 전달한다"고 말했다.

항공안전에 신경 쓸 수 밖에 없는 조종사들의 제지로 간혹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9.11테러 이후에는 승객 탑승전 조종실의 문이 닫히기 때문에 비밀반입이 더욱 쉬워졌다고 한다.

◆ 갑질견제 장치는 '경영권 박탈' 제도화

이같은 사주일가의 전횡이 제왕적 권력에서 나오는 만큼 이에대한 견제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핵심은 자격미달의 사주일가를 경영전면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18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런 능력도 도덕성 검증도 안된 함량미달인 사람이 사주라는 이유로 경영진이 되는 것이 문제"라며 "부당채용이나 회사에 손해를 끼쳐 실형을 선고받을 때 강력한 조치가 이뤄지도록 상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노조가 추천하는 노동이사제 도입이나 재벌 오너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사외이사 확충을 통해 이사회의 견제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시급히 검토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진그룹 3세 경영진의 갑질 파문을 계기로 야당에서도 무자격 자녀들의 경영권 배제를 추진하고 나서 제도개선 기대가 어느때보다 커지고 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