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등 현장에서는 독립 기구를 설치해 예술 행정을 정부로부터 분리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관련 해법이 정부 조직 개편 논의로 불붙을 조짐도 보이고 있다.
◇ "문체부서 예술 기능 떼 독립위원회 만들자" vs "독립성 오히려 침해 될 것"
민관 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18일 오후 서울 KT광화문빌딩에서 제도 개선안과 관련해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진상조사위는 예술 정책과 행정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독립 기구인 국가예술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인권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처럼 예술 행정과 집행을 총괄하는 독립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는 문체부에서 문화예술 정책 수립과 집행, 평가 등을 총괄하고 있다. 문체부가 장르별로 지원과를 두고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등을 집행기관으로 삼는 방식이다. 이런 위계화, 서열화된 구조를 통해 정부의 입김이 내려오면서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이 침해되고 블랙리스트 원인이 됐다는 게 진상조사위의 진단이다.
이원재 진상조사위 대변인은 "문체부 담당 부서에서 인사권 및 예산권을 바탕으로 소속 기관을 일방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독립성과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며 "국가 문화행정 전반에 협치 구조가 부재하고, 문화행정에 대한 사회적 통제 구조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문체부 산하에서 예술 행정을 따로 떼어내 정권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국가예술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문체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체부 강정원 예술정책과장은 국가예술위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강 과장은 "기존 헌법이나 법령에 규정하고 있는 행정조직에 어긋나거나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며 "현재는 한국문화예술위가 민간의 영역에 속해 있는데 그것을 다시 국가 정부 기구로 만드는 것으로 오히려 권력과 정부의 종속이 강해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국가예술위라는 또다른 조직이 생기면 독립성이 약화되고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 과장은 "문화예술 정책은 연예, 출판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돼 있는데 정책과 집행 기능이 분리됐을 때 부처간 갈등도 생길 수 있다"며 "행정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운영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변화돼야지, 위원회로 모든 걸 이관한다고 예술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은 앞서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국가예술위 설치를 둘러싼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블랙리스트 이후 제도 개선에서 주된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예술계 현장은 물론이고 문화예술위 등 산하 기관에서도 독립 기구 설립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제도 개선 권고안은 다음달 8일에 최종 확정될 예정이며 국가예술위 설치도 권고안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진상조사위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인 민관 합동 기구이지만 민간 위원들 비중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국가예술위 설치는 새로운 정부 부처를 신설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국회와 청와대, 기획재정부 등과도 연관돼 있는 만큼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아직은 정치권에서 크게 관심은 보이지 않고 있는데, 권고안에 포함돼서 논의가 시작된다면 결국 공은 국회, 정치권으로 넘어갈 것 같다"고 예상했다.
도종환 장관은 다음달 권고안을 토대로 청와대, 총리실과 본격적인 협의를 해 나갈 예정이어서, 진상조사위가 블랙리스트 해법으로 제시한 국가예술위 설립이 어떻게 결론지어질지에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