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마지막 작품이란 생각으로 열정 다 쏟았다"

[노컷 인터뷰] '미스티' 고혜란 역 김남주 ②

지난달 24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고혜란 역을 맡은 배우 김남주 (사진=더퀸AMC 제공)
지난달 24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의 주인공 고혜란(김남주 분)은 모든 걸 가진 여자로 묘사된다. 주름이나 퍼진 살을 찾아볼 수 없이 늘 완벽히 단련된 외양, 뚜렷한 언론관, 언론인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거기다 집안 좋은 검사 출신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도 있다.

'모든 걸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잃을 것투성이'라는 의미도 된다. 공교롭게도 '미스티'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것 같았던 고혜란의 삶에 균열이 가는 것으로 출발하는 드라마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담보해도, 실력과 신뢰성을 인정받아 최고의 언론인상을 수년째 수상해도 소용없다. '나이 든 여자'인 그는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만 앵커 자리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다.

가장 전면에서 뉴스를 책임지는 앵커로 존중받지 못해 동료에게 의상으로 비아냥을 듣고, 모든 언론사가 뛰어든 한국인 프로 골퍼 케빈 리(고준)의 단독 인터뷰를 따 온다고 해도 '발악을 한다'고 폄훼 당하는 것은 일상이다. 하지만 고혜란은 실력으로 승부하는 원칙을 지켰고, 체면 차린답시고 할 말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고혜란을 열렬히 지지하는 시청자 가운데에는 여성이 많았다. 실제로 김남주는 '미스티' 이후 여성 팬이 많이 늘기도 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미스티' 종영 기념 배우 김남주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그 어느 분야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연예계에서 24년을 보내온 김남주에게도 '여성이기에 더 고된'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는 직업적으로는 그런 적이 없었지만,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답했다.

(노컷 인터뷰 ① 김남주 "이 나이에 보기 힘든 여성 캐릭터 각인시켜 뿌듯")

◇ "대한민국 여성으로 사는 건 저도 힘들다"

고혜란은 앞뒤 잴 것 없는 직진형 인간이었다. 언제나 목표가 뚜렷했고 자기 뜻대로 나아갔다. 그러나 김남주는 고혜란과는 달랐다. 그래서 "연기하면서 더 통쾌했다". 많은 사람이 고혜란에 열광했던 점이 바로 이 '타협 없는 삶'이 아니었을까.

김남주는 "저도 신인 때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았다. 모욕적인 말을 너무 많이 들었는데, '그런 얘기 안 듣겠어!' 한다면 이 바닥을 떠나면 된다. 저는 좀 타협했을 뿐이다,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런 것들을 참아내고 겪어내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밝혔다.

더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실력 있는 여성임에도 젊고 아름다운 후배에게 자리를 위협당하는 고혜란처럼,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어려움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한민국의 엄마로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런 걸 더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아이도 키우고 일도 하는 엄마들은 두 가지를 다 해야 하잖아요. 연예계는 유리천장이 있다기보다, 다 각자의 개성으로 자기 밥그릇이 있는 곳이라고 봐요. 우리 연기자들은 시청자들이 사랑해 주면 되는 거니까요. 제가 노력한다고 다 잘 되진 않더라고요. 우리 일은,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도 제 맘대로 될 수 없어요. 하지만 반응을 해 주시면 누가 막더라도 스타가 되긴 하더라고요.

직업적으로 느낀 건 없지만, 대한민국 여자와 엄마로 살아가는 건 저도 힘들어요. 커리어우먼들이 다 그래서 힘든 거죠. 온전히 드라마를 할 때는 애들을 전혀 돌보지 못하니까요. 드라마를 안 하면 애들을 볼 수 있지만. 기자분들도 그렇고 직장 가진 여성들은 계속 스트레스받고 일하다가 집에 가서도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피곤함이 지속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일할 거면 아기 낳지 말고, 일 안 할 거면 낳으라고 조언할 때도 있어요.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그럴 때 느낀 점이 있죠. 게다가 우리 한국 남성들이 조금 가부장적이시잖아요? (웃음) 요즘은 좀 많이 바뀌어서 다행이에요. 우리 딸 결혼할 때는 여성들이 더 좋은 위치에 많이 있을 것 같아서요."

고혜란은 집 밖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존재였지만, '딸'이나 '아내', '며느리'일 때는 기대되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갈등을 겪었다. 늘 '꽃 같이' 아름다워야 한다며 오랜만에 만난 딸을 보자마자 탄수화물 많이 먹엇냐고 타박하는 어머니, 아이가 들어서는 약을 꼬박꼬박 보내주며 임신 압박을 주는 시어머니, 브레이크 없이 성공을 향해 가는 자신의 속도를 늦추기를 바라는 남편에 둘러싸인 인물이었다. (사진='미스티' 캡처)
◇ '인생 캐릭터' 고혜란과 닮은 점


어떤 배우가 자기 이미지와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나 명연기를 선보일 때 '인생 캐릭터'라는 말을 쓴다. 배우 본인이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너무 멋진 캐릭터"라고 했을 만큼, 고혜란은 더할 나위 없는 '인생 캐릭터'였다.

'내조의 여왕', '역전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까지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주부 역할을 세 번 연속 해 온 그였기에, 이번 변신의 의미는 더 남다르다. 김남주는 "더 아줌마가 된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아줌마도 엄마도 아닌 직장인 여성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멋진 캐릭터로 시청자에게 재평가받는 것이지 않나"라며 "'본명이 뭐였더라' 한 분이 있었다.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혜란 캐릭터는 제일 예쁘게 나오기도 했다. 맘껏 예쁜 걸 입어도 되고, 연기도 맘껏 해도 되고. 현장에서도 제일 연장자라 제가 왕이고"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어차피 우리는 누군가 봐 줘야 하고, 누군가의 평가가 사실이 되는 자리이지 않나. 여러분들이 그렇게 평가('인생 캐릭터')해 주시니 전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평소 모습은 '내조의 여왕' 천지애에 가깝다는 김남주는 고혜란을 연기하기 위해 자신에게 없는 모습을 많이 꺼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히 고혜란과 닮은 점이 있었다. 세련된 이미지라든지, 선택한 것에 집중하는 것.

김남주는 "신인 때부터 '도시적이다', '세련됐다' 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거기에 연륜에서 쌓인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희로애락을 느껴, 깊이감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선택과 집중이다. 선택했으면 최선을 다하고 포기도 되게 빠르다. 아닌 것에 대해서는 연연하지 않는다. 또 고혜란과 닮은 점이 있다면 당당하려고 노력하는 점? 아닌 것에 대해 아니라고 얘기하며 끝까지 밀어붙이는 건 당연히 있다. 어떤 작품이든 제가 선택했으니 최선을 다하는 거다. '이 정도면 됐어' 이런 건 없다"고 강조했다.

◇ '미스티' 이후, 배우 김남주에게 찾아온 변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내조의 여왕' 천지애, '역전의 여왕' 황태희, '미스티' 고혜란, '넝쿨째 굴러온 당신' 차윤희 (사진=각 방송 캡처)
연기력 호평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받아왔고, 그에 못지않은 화제성까지 지니고 있음에도 김남주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했다. "감히 연기자가 꿈도 아니었고, 제가 연기에 혼이 있는 배우는 아니다. 연기는 직업일 뿐이라고 많이 말해 왔다"는 그는 '미스티'가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라는 걸 직감했다.

"이런 모습으로 나오는 작품은 마지막일 거라고 많이 얘기하고 다녔어요. 제가 50이 넘으면 얼마나 늙어있겠어요. 이런 좋은 모습으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 마지막 작품일지도 몰라서 열정을 다 쏟았어요. 연기하면서 약간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감히 배우라고 해도 되나, 하는.

처음부터 연기를 잘했던 건 아니었죠. 많은 경험과 연습들이 쌓이면서 연기 실력이 좀 나아졌나 하는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오히려 '미스티'를 통해 연기 욕심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현장이 좋고 연기가 좋았다면 공백기가 그렇게 길지 않았겠죠. 아이를 포기하고 연기할 만큼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좋은 작품이 있다면 조금 더 용기 내고 욕심낼 생각이에요."

댓글에 굳은살이 배긴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김남주는 "저는 안티가 많아서 항상 확인을 안 했다. 그래도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반드시 있으니까 신경 안 썼는데, 요즘은 댓글 보는 버릇이 생겼다. 너무 좋은 댓글이 많아서! 이번 드라마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이 '안티도 돌아서게 한 악마의 재능'이라는 거였다. 요새는 안티가 정말 줄었다. 아직도 (악플에 대한) 상처가 있어서 다 보진 못하지만, '미스티' 하는 동안에 제 댓글은 90% 이상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하는 데 용기와 욕심이 생겼다는 김남주. 좋은 작품에 기회가 닿는다면 얼마든지 출연하고 싶지만, '미스티'에서의 모습이 워낙 강렬해 한편으로 걱정도 된다고. 그는 "고혜란으로 인한 폭발적인 반응이 좋으면서도, 후배들한테 '앞으로 나 이제 뭐 하냐'라고 했었다. 이렇게 좋은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부담스럽고 걱정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제게 맞는 드라마가 있다면, 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흔들리지 않고 작품을 하겠다"고 밝혔다.

◇ 삶의 궁극적 목표는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것'

배우 김남주 (사진=더퀸AMC 제공)
'미스티'의 고혜란은 앵커 오디션을 위해 아이를 지울 만큼 야망에 가득 찬 캐릭터였지만, 현실의 김남주는 정반대였다. 그는 인터뷰 곳곳에서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가족들은 모처럼 복귀한 그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다.

남편 김승우는 '미스티'를 제일 앞장서서 추천해 준 인물이었다. 대본 연습도 맞춰 줬다. 김남주는 "김승우 씨가 없으면 뭘 해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좋은 친구이자, 정신적 지주"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이 잘 돼서) 남편이 제일 기뻐했다. 모든 결정을 할 때 남편이 없으면 잘 못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혼자 어떻게 저를 키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자녀들도 큰 힘이 됐다. 큰딸은 '미스티'의 광팬이었다. 너무 재미있다며, 보통의 '시청자'이자 '네티즌'처럼 작품을 즐겼다. 시어머니 역할을 하기 전에 더 많은 작품을 하라고 조언한 것도 딸이었다. 만약 연기하게 된다면 보통 작품에서 친정엄마보다는 비중이 큰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게 낫다고까지 했단다.

김남주는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전부다. 제가 잘 되는 것보다 당연히 아이들이 잘 되는 게 좋다"며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고 삶이 풍성하고 배우로서도 조급하지 않았다. 아이들로 이미 보상을 다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인생 목표는 아이들을 이 사회에서 정말 한몫을 하는 인재로 키워내서 김승우 씨랑 와인 마시는 게 꿈이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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