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박사가 2012년 한국항공우주원을 퇴사했다. 전혀 상관 없는 경영학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르더니 이듬해에는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해 그곳에 정착했다. 한국에서는 "혈세 260억원을 들인 한국 우주인 타이틀이 사라졌다"는 이른바 '먹튀 논란'이 일었다. 국내 우주산업 역시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SBS스페셜' 제작진은 현재 미국 워싱턴 주 작은 도시에 사는 이 박사를 만났다. 그 결과물이 지난 15일 밤 '고독한 우주인 - 지구 귀환 3649일째'라는 제목으로 전파를 탔다.
10년 만에 다큐멘터리 카메라 앞에 섰다는 이 박사는 이날 방송에서 '먹튀'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처음에는 솔직히 화도 나고 서운하기도 했다. 맨 처음에는 일단 먹튀라는 단어 자체가 먹고 튄 거잖나. 결국은 저라는 사람을 우주에 보내기 위해 들어간 돈인데 제가 제 일을 제대로 못한 것 때문에, '너 때문에 돈 썼는데 이게 다 헛것이 됐다'라고 받아들이는 일부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한국을 떠나 미국인으로 국적을 변경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국적 논란 기사가 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미국 국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나, 미국 국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그래서 남편이랑 결혼했을 때도 국적 논란 기사가 날 때까지 영주권 신청도 하지 않았었다. (지금도 국적은) 한국이다, 대한민국.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 "'어떻게 우주인을 비정규직으로 데리고 있냐'는 비난에 힘겹게 정규직 전환"
사실 한국은 국제우주정거장의 회원국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발사체를 개발할 기술력도 부족하다. 이로 인해 후속 사업을 이어가기란 애초부터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항공대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과 장영근 교수는 "그 당시 우주 계획에 '계속해서 우리가 우주인을 양성하겠다'라는 원론적인 얘기는 써 놨었다. 그렇지만 저 같은 사람 입장에서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었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실제로 우주인을 양성할 정도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만족해야 한다. 하나는 유인 우주선을 우리가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든가, 아니면 우리가 국외에 국제정거장 같은 대형 우주 사업에 상당한 재원을 투자해, 우리가 우주를 같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포션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돈이 없다."
우주인 선발 때 약속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의무복무기간이 끝나자 이 박사의 위치도 애매해졌다. 이 박사의 지구 귀환과 함께 꾸려졌던 연구팀도 2년 뒤 끝내 해체되고 말았다. 후속 사업을 계획해 보려고도 했지만, 이미 정해진 결과를 뒤집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항공우주연구원 김난영 전 연구원은 "거의 (이 박사에게) '나가라'는 분위기이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다 나간 상태였다"며 "보통 연구원 내에서는 사업이 시작되면 중장기로 들어가서 5년, 10년 이상 하는데, (이 박사가 속한) 그 팀은 이벤트 성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지금도 그 직원들하고 통화할 때마다 그 친구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저는 너무 미안하다. 왜냐하면 우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만 남고 나머지는 다 나갔다"며 "그리고 사실 저 또한 원래 비정규직이었다가 '어떻게 우주인을 비정규직으로 데리고 있냐'는 비난 때문에 거의 힘겹게 정규직 전환이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시 정부는 왜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부은 우주인 육성 정책을 이어가지 못했을까. 실제로 정부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우주부분 예산 비율도 점점 줄어들었다.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원장 홍의락 의원은 "우주인을 이용한 연구개발, 우주에 대한 연구개발 이런 것들은 예산을 하나도 잡지 않았더라"며 "산업, 자원외교 쪽으로만, 그리고 토목 공사, 4대강 이런 것에 집중하면서 국가 미래에 대한 설계가 부족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장영근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가 140개였다. 그 중에 우주 개발, 달 탐사가 넘버 13번이다. (우선순위가) 높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정부는) 이렇게 얘기했다. 2019년 12월에 인공위성 발사를 하고 2020년 6월, 그러니까 6개월 뒤에 인공위성 발사를 하나 더 하고, 그리고 3개윌 뒤인 2020년 9월에 달 궤도선을 발사하고, 또 3개월 뒤인 2020년 12월에 달 착륙선을 개발한다는 거였다. 달 궤도선에서 탐사선으로 가는 것은 중국도 5, 6년 걸린다. 3개월 만에 한다는 게…. 근데 그 계획을 정치적 목적으로 안고 간 것이다."
◇ "차라리 우주선에서 죽었으면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죽을 고비까지 넘기며 지구에 귀환한지 10일 뒤, 이 박사는 체력이 다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근무한 5년 동안 외부강연을 포함한 과학전시 행사, 방송 출연 등 대외 활동만 580여회니 소화했다. 그 와중에 30여건의 우주과학 논문에 참여했고 1건의 특허등록도 마쳤다.
그는 "가끔 저는 이제… 되게 제 가족하고 제 남편한테 되게 미안한 말인데,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나 스캔들로 힘들 때 차라리 내가 (우주선을 타고) 올라가다가, 돌아오다가 죽었으면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 힘든 일 안 겪고 되게 대단한 사람으로 죽지 않았을까"라며 눈물을 보였다.
우주인과 상관없는 MBA 과정을 선택한 데 대해서는 "연구자는 돈과 상관없이 연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돈이 없으면 연구도 못한다"며 "특히나 우주인으로 연구 분석을 해야 하고 연구를 해야 되는데, 가장 큰 문제가 연구비다. 그런데 그 연구비를 누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고 답했다.
이어 "요즘 미국 분위기가 이제 정부 주도적으로 우주(연구)를 하고 과학기술을 하기 보다는 민간 주도로 하는 일들이 되게 많다"며 "옛날에 나사(NASA)랑 협력하려면 돈 엄청 확보해야 하고 외교적인 문제를 다 해결해야 하고 국방이나 보안 문제를 다 해결해야 했을 때에 비해서 민간 쪽에서 한국하고 함께 일하기가 나을 텐데, 그렇다고 하면 제가 연결해 주고 소개해 주고 함께할 수 있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올해 한국 첫 우주인 탄생 10주년을 맞아 최근 한국에 와 강연을 펼쳤다. 그는 "그 누군가가 저한테 제안을 할 때 한국에 와서 강연도 하고 같이 10주년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얘기를 처음에 제안했다"며 말을 잇다가 또 다시 눈물을 훔쳤다.
"그때 저는 그랬다. '아무도 기억 못하는데 혼자 가서 내 생일 잔치에 나 혼자 촛불 켜고 하는 게 너무 좀 이상하지 않냐'고. 그런데 최근 여기(미국)서 활동하다보니까 교과서에서 저를 봤다면서 인사하는 한국 학생들이 있더라. 그 다음에 몇몇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분들이 '그래도 소연씨 기다리고 같이 뭐 하고 싶다는 사람 많아요', 그러니까 한 사람만 있다고 하면 가서 함께 보내고 의미 있는 시간 보내면 좋겠다 이런 생각했다."
제작진은 "우주개발 계획이 늦춰진 데 대해 이 박사 한 사람에게만 그 책임을 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의미심장한 물음을 한국 사회에 던졌다.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이택광 교수는 "사실 먹튀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공정성 논쟁과 함께 결합돼 있는 프레임"이라며 "이게 한 번 씌여지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 사안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들으면 먹튀를 한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