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음에 눈칫밥에…답답해하는 10살 학생
바로 옆 레인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강사가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학생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수영장에서 A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생존수업 수업을 받고 있었다.
6개 레인 가운데 학생들은 1개 레인과 높이 55cm의 유아용 풀장만 이용할 수 있었다. 나머지 5개 레인은 이 학교 수업이 잡히기 전부터 이어져 온 수중 에어로빅, 이른바 아쿠아로빅 강습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소음을 견디며, 교사들은 눈칫밥을 먹으며, 또 수영강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수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수업을 받던 학생 이다영(10)양은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나 "수영을 배우는 것 자체는 너무 재밌다. 그런데 수영선생님 하는 말이 잘 안 들린다"며 눈을 찡그렸다. 옆에 있던 교사는 "학생들이 오면 아쿠아로빅 하시는 어머님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눈치가 보인다"고 토로했다.
◇ 의무화? 시설은 턱없이 부족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교육당국은 전체 초등학교 3~4학년을 대상으로 생존수영을 의무적으로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생존수영은 물에 빠졌을 때 좀 더 오래 버티게 해주는 영법이다. 물에 뜬 상태로 호흡하는 법, 심폐소생술 등으로 구성된다.
서울시내 초등학교는 597곳. 생존수영 수업을 의무로 받아야 하는 3~4학년 학생은 모두 14만여명이다.
반면 서울시에 등록된 공립·사립수영장은 모두 122곳이다. 학교 자체에 수영장을 갖춘 강남구 도곡초·언북초, 광진구 경복초 등 42곳을 합해도 수영장은 고작 164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학교들은 수영장 섭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반 강습과 같은 시간에 수업을 진행하는 A학교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인 셈이다.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아예 수영장을 구하지 못해 생존수영 수업을 진행하지 못했었다"며 "교육의 취지는 좋지만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보니 고민하고 애타는 건 학교의 몫"이라고 털어놨다.
더구나 수영장마다 수업시수나 커리큘럼이 달랐다. 일정한 수업지침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수영장의 생존수영 강사는 "수업안도 그렇고 어떤 명확한 지침이 없기 때문에 강사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생존수영협회 서문지호 이사는 "지금 강사들이 무분별하게 자기들 스타일대로 가르치고 있다"며 "부산지역에서 수업을 듣다 서울로 이사와도 똑같이 진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규정이나 법제화까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국은 생존수영 수업을 시행하라고 각 학교에 강조할 뿐, 별도로 경과보고는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난사고 시 생존율을 높여준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의미 있는 대책이지만, 반짝했던 관심과 지원이 식으면서 이처럼 학교와 학생들은 우왕좌왕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오는 2020년까지 생존수영 교육을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수영장 대란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전학년으로 확대하면 좋은데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구축이 안 돼 있어서 힘들다"며 "학생들이 1년에 보통 6번씩은 수영장에 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확대는 불가능하고 전체 여건이 만들어 진 뒤에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