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김기식 입장문은 인사시스템 전반에 대한 고민

"오랫동안 인사시스템 로직 살펴"…관행으로 전현직 의원 입각 불가 안돼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이례적으로 발표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입장표명에는 많은 것이 함의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5월10일 출범 한 뒤 초기 내각 구성을 놓고도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단 한차례도 입장문을 내놓지 않았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전 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성진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전 과학혁신본부장 등은 혼인무효 소송과 음주운전 은폐 의혹, 창조론 등 개인의 신념, 황우석 박사 지원 논란 등으로 업무 전문성과 상관없이 야당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리다 결국 자진 사퇴 형식을 밟았다.

김기식 원장 역시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간 사실과 인턴 직원 동행, 그리고 국회의원 임기 말 후원금 사용 방식을 놓고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으로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난타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김 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하도록 하겠다",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시키겠다"라고 밝힌 것은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먼저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위법 여부를 떠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도 했지만, 현재 이뤄지고 있는 야당의 파상 공세에는 결코 굽히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한국당은 물론 여소야대 정치지형에서 우군으로 꼽히던 유일한 야당인 정의당마저 김 원장에 대한 임명철회를 당론으로 정하고, 집권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일부 감지되지만, 대통령의 인사권 역시 지켜져야 한다는 평소 철학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와 함께 야당의 파상 공세가 고위공직자의 임기 수행 불능이라는 문제제기를 넘어, 정략적 접근으로 치닫고 있다는 대통령의 판단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판단에 따라야 하겠지만 위법한지, 당시 관행이었는지에 대해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날 청와대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에 김 원장의 행위에 대한 위법성 여부 검토를 질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민주당 협조로 19~20대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사례 중 김 원장과 마찬가지로 관행적으로 피감기관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떠난 사례가 한국당에서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된 만큼, 야당의 일방적인 공세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단호함도 뭍어난다.

김 원장에 대한 임명철회나 김 원장의 자진사퇴가 현실화될 경우, 향후 2기 내각 구성의 어려움도 내다본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 기회에 인사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을 말씀드리고 싶다"며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은 주로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편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며 "하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 늘 고민이다"라는 개인적인 고충도 이례적으로 피력했다.

금융시장 전반에 만연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특히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덩치 큰 금융기관들의 사적 이익 추구와 경영진들이 개입한 불법 채용, 예대마진 수익에만 매몰돼 국민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비효율적 경영 방식 등에 매스를 들이대려면 관료나 금융업계 출신이 아닌 외부인을 금융감독 수장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읽힌다.

특히 김 원장의 임기 수행이 과거 관행에 발목잡혀 좌초될 경우, 두번 다시 개혁적인 국회의원 출신의 공직 임명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도 감지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지난 주부터 새로운 인사 기준에 대해 고심했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에 김 원장이 사퇴하게 되면 청와대 5대 인사원칙처럼 새로운 인사검증 항목이 추가될 수밖에 없고 결국 전현직 의원들의 내각 구성은 요원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김 원장에 대한 임명 고수뿐 아니라 집권 2년차에 필요한 개혁 드라이브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인사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이 깊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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