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 "블랙리스트 통렬히 반성…내부 혁신할 것"

2009년부터 정부 당국 블랙리스트 따라 지원 배제…밝혀진 사례만 56건

영화진흥위원회 오석근 위원장이 4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지원 사업 수행 과정에서 벌어진 '영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4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국민·사과문을 통해 "영진위는 지난 두 정부에서 관계 당국의 지시를 받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차별과 배제를 직접 실행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 통렬하게 반성하고 준엄하게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영진위는 2009년 각종 지원사업 심사에 부당 개입해 사실상 청와대와 국정원 등 정부 당국의 지침에 따라 지원작 혹은 지원자를 결정하는 편법 심사를 자행했다"면서 "이는 2008년 8월 당시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주도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에 따라 실행된 조치라는 분석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8년 가까이 이어져 온 블랙리스트 의혹을 인정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 당국과 영진위가 어떤 방식으로 영화계 블랙리스트를 운영해왔는지 밝히기도 했다.

오 위원장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와 관계 당국은 특정 영화인 배제 지침을 영진위에 하달, 영진위는 각종 지원 신청작(자)에서 지침과 가이드라인에 해당하는 작품과 영화인들 선별해 보고했다. 그러면 관계 당국은 특정 작품의 지원 배제 여부를 결정해 영진위에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영진위는 편법 심사에 협조할 수 있는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심사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블랙리스트 작품이나 영화인에게 영화발전기금으로 이뤄지는 지원을 막았다.

뿐만 아니다. 영진위는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 걸림돌이 될 것 같은 내부 직원을 별도 관리해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이렇게 정부 당국과 영진위가 지원 배제시킨 영화, 영화사, 영화인의 사례는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56건에 달한다.

영진위가 실행한 대표적인 블랙리스트 지원 배제 사례는 다음과 같다.

2009년 단체지원사업에서 촛불시위 참여단체를 배제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위탁사업의 공모제 전환과 사업자 선정에도 부당개입했다.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동성아트홀, '다이빙벨'을 상영한 여러 예술영화전용관과 독립영화전용관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은 절반으로 삭감했다.

2015년 예술영화 지원사업에서 박찬경 감독은 '야권 지지자'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이송희일 감독과 오멸 감독은 진보성향이라는 이유 등으로 각각 청와대로부터 지원 배제 지시를 받았다.

재일조선인, 성미산 마을, 성소수자, 한진중공업, 간첩, KT노동자, 강정해군기지, 일제고사 거부 등의 소재를 담아낸 영화들은 문제적 작품으로 취급받으며 지원 배제 대상에 포함됐다.

오 위원장은 "블랙리스트 실행은 참혹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아직 진상이 명백하게 규명되지 않은 일도 적지 않고, 밝혀진 과오를 바로잡고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조치도 턱없이 미흡하다"면서 "앞으로 영진위는 내부 '영화진흥위원회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통해 후속조사를 진행해 미규명 사건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조사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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