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주인공 '순이 삼촌'은 제주 4·3 사건의 학살 현장에서 시체더미에 깔려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운좋게 살았다고는 해도 죽은 몸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로 30여년 세월을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순이 삼촌 이야기는 제주사람 이야기다. 순이 삼촌이 겪었던 정신적인 혼돈은 한국 현대사의 궤적과 같다.
1947년 제주도는 한반도 땅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 이념 갈등과 진영 간 폭력이 난무하던 공간이었다. 그해 3·1절 기념식에서 경찰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에 항의해 민관이 총파업에 들어가자 미군정은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앞세워 좌익세력 탄압에 들어갔다.
1948년 4월 남로당 주도로 무장봉기가 일어났고 가을에는 제주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1949년 1월 혹한 속에 군경토벌대가 북촌리 주민 400여명을 집단 총살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듬해 여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총살과 집단 수장, 암매장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자행됐다.
제주 4·3 사건이 금단의 영역에서 풀려난 것은 1999년 12월 김대중 정부에서였다.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3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들에게 사과했다. 2013년에는 수십 년 동안 등을 돌리고 살아왔던 '4·3 유족회'와 '제주도 재향경우회'가 손을 잡았다. '우리는 모두 피해자'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제주 4·3은 비로소 상처가 치유되고 명예가 회복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데올로기라는 신을 믿는 괴물들은 여전히 활보하고 있다. 선한 양민이었던 '순이 삼촌'이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죽음의 공포와 이데올로기 트라우마가 우리들 가슴에 여전히 멍들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70년 전 해방 공간의 이데올로기 역사와 지금의 분단 공간의 이데올로기 역사 역시 달라진 것이 없다. 70년의 세월로도 풀지 못한 갈등과 상처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데올로기의 광풍 속에서 참혹하게 짓밟힌 제주도민들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할까. 70년 세월의 먼 광야를 건너온 만큼 밖으로는 용서를, 안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모진 세월을 보내야 했던 제주도민들을 다시 역사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한다.
제주 4·3은 '순이 삼촌' 얼굴에 웃음이 피는 날이어야 한다. "제주에는 '순이 삼촌'이 산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봄날이어야 한다. 제주 4·3의 종착지는 이데올로기라는 괴물로부터 당한 수난과 죽음을 극복하고 다시 태어나는 평화와 환희의 부활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