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감사국은 지난 1월 28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블랙리스트 및 부당노동행위' 관련 감사를 했고, 그 결과를 2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방송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과 MBC 내부에서 폭로된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문건을 확인하고 전임 경영진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기소됨에 따라 불법행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감사 결과, MBC 전임 경영진은 지난해 8월 카메라기자들이 폭로한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는 물론, '아나운서 성향분석', '방출 대상자 명단'을 마련해 인사에 활용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 '강성-약 강성' 분류된 인물 중 69%25가 인사 불이익
우선 '아나운서 블랙리스트'는 아나운서국의 최모 아나운서가 2013년 12월 '아나운서 성향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문건이며, 당시 아나운서국 관할 임원이었던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에게 보고됐다.
이 문건은 아나운서를 '강성', '약 강성', '친회사적' 등 3가지 성향으로 분류했다. 이름, 직급(입사년도), 진행 프로그램, 기타 사항이 표 형식으로 정리돼 있었다.
강성(6명)에는 "왕따, 패거리 짓기 등 언론노조 복귀지침 준수"라는 설명이, 약 강성(7명)에는 "복귀지침을 준수하진 않지만 상황에 친 언론노조 성향"이라는 설명이, 친 회사적 성향(19명)은 "파업 이전과 동일하게 조직에 복귀 적응하고 있음"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강성, 약 강성으로 분류된 13명 중 5명은 업무배제 등의 차별을 받다 결국 퇴사했고, 4명은 기존 업무와 무관한 아나운서국 외 전보 발령을 받았다. 최소 9명(69%)이 '블랙리스트'로 인한 인사 불이익을 받은 것이다.
안광한 전 사장은 2014년 9월 12일 임원회의에서 당시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에게 박OO, 김OO 등을 빼면 인력을 줄 수도 있다(신입 충원)며 박OO는 빼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고, 아나운서를 뽑긴 하되 형태를 다양하게 가도록 하고 동기문화를 절대 만들면 안 된다고 발언했다.
안 전 사장은 2015년 5월 15일 임원회의에서도 손OO, 김OO, 오OO 등 아나운서에 대해 정확한 지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그해 6월 5일 회의에서도 위 3명은 반드시 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오OO 아나운서는 신매체개발부로, 손OO 아나운서는 사회공헌실로 발령 났고 김OO 아나운서는 상반기 육아휴직 후 2015년 8월 퇴직했다.
권재홍 전 부사장은 2015년 8월 24일 임원회의에서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가입자가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 방출 대상자 78명 중 78.2%25가 실제 방출
MBC 감사국은 2014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조OO 전 비서실장이 백종문 당시 미래전략본부장에게 메일로 보낸 '임원회의 요약본' 로그를 확보했다. 2014년 10월 24일 임원회의 자료에서 '방출 대상자 블랙리스트'가 작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MBC 감사국이 발견한 '방출 대상자 명단'에는 전 직종을 아울러 78명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이 중 대다수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 소속이었다. 2014년 하반기에 작성된 이 문건은 그해 10월~11월에 난 대규모 인사에 반영됐다.
MBC 감사국은 "주어진 업무도 없이 소위 '유배지'로 불렸던 신사업개발센터와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전보된 사람 20명, 경인지사·교육발령·주조 MD 등 한직으로 전보된 사람 41명 등 61명이 전보발령됐다. 이는 방출 대상 블랙리스트 총 78명 중 78.2%가 실제 방출된 것이며, 나머지도 대부분 주요 부서에서 근무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는 기자들을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노조 참여도에 따라 ☆☆, O, △, X 등 4가지 성향으로 분류해, 입사 기수별로 나열했다.
☆☆은 "회사의 정책에 충성도를 갖고 있고 향후 보도 영상구조 개선과 관련해 합리적 개선안 관련 마인드를 갖고 있는 이들", O는 "회사의 정책에 순응도는 높지만 기존의 카메라기자 시스템의 고수만을 내세우는 등 구체적 마인드를 갖고 있지 못한 이들", △는 "언론노조 영향력에 있는 회색분자들", X는 "지난 파업의 주동계층으로 현 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들"로 설명돼 있었다.
'요주의 인물 성향' 문건에는 X, △, O로 표시된 3개 분류자에 대해 개인별 성향과 인물 평가가 매우 상세히 담겼고, '계속 격리', '방출 필요', '주요 관찰대상', '회유 가능' 등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해당 문건을 작성한 권OO 기자는 2014년 3월 13일 취재센터장에게 인사배경 등의 설명을 덧붙여 블랙리스트가 반영된 인사안을 보냈고, 다음날인 3월 14일 이 내용이 거의 그대로 인사에 적용됐다.
인사안에 나온 12명 중 9명이 그대로 인사 발령됐고 나머지도 '노조 강성으로 회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타 부서로 갔다. 반면 회사에 호의적인 ☆☆ 등급 분류자들은 정치부 청와대 반장·국회 반장·청와대, 시사제작2부, 사회2부 영상데스크 등에 배정됐다.
◇ 임원회의에 나타난 '부당노동행위' 발언 보니
MBC 감사 결과, 전임 경영진은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방출 대상자 명단',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활용하는 중심에 서 있었다. 또한 임원회의에서도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특정 인물을 배제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해 왔다.
경영진이 가장 염두에 뒀던 것은 '1노조(언론노조 MBC본부) 탈퇴'였다. 안 전 사장은 2014년 4월경 보직 부장들은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고, 각 국장이 부서장에게 노조 탈퇴를 직·간접적으로 종용했다. 결국 노조 소속부장 19명 중 17명이 탈퇴했고, 이를 거부한 2명은 보직을 잃고 전보 발령됐다.
2015년 4월 20일 임원회의에서는 안 전 사장이 '노조 가입'을 이유로 임원들을 질책하는 일도 있었다. 그해 초 경력 공채로 입사한 방송인프라본부 5명, 드라마본부 2명이 바로 언론노조 MBC본부에 전원 가입했기 때문이다. 권 전 부사장 역시 경력사원들이 모두 노조에 가입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보도 쪽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인사고과에서 최하등급을 주어 직원들을 퇴출하는 방안도 꾸준히 논의됐다. 안 전 사장은 2014년 7월 임원회의 때부터 인사고과 시 최하등급인 R을 부여해 이를 근거로 인력을 퇴출시키기 위한 계획을 갖추도록 지시했다.
같은 해 9월 26일 임원회의에서는 업무에 복귀한 R 등급자에 대해 반드시 해고 사례가 나오도록 개야 하며, 소송을 감수하더라도 R 등급 부여를 실행하고 내년(2016년)에 3명은 퇴출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2014년 10월 6일, 2015년 6월 29일 임원회의에서도 안 전 사장은 주요 인물을 '반드시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에는 특정 인물을 직접 거론하며 본 업무와 무관한 부서에 보내거나 R등급을 주는 방식으로 프로그램 제작부서로 복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감사를 통해 밝혀진 전임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는 △노조 탈퇴 지시 및 임원들에게 이행 독려 △인사고과 'R' 강제 부여 및 퇴출 계획 지시 △노조원의 프로그램 배제 지시 △방송현업 및 기존부서에서 방출 대상자 명단 작성 △유배지(임원회의에서 '보호관찰소'라 표현) 신설 및 노조원 격리 △공정방송협의회 조항 삭제 시도 △1노조 배제 및 3노조 지원 등 차별적 노조 관리 △각종 노조 활동 방해 등이다.
◇ MBC "사규에 따른 조치 진행 예정"
MBC 감사국은 "MBC내 블랙리스트는 기 드러난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 블랙리스트'도 추가 확인되었고, 더 나아가 임원회의에서는 전사적 '방출대상자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조직적으로 시행한 것이 확인됐고, 임의 판단한 회사충성도나 노조성향에 따라 분류, 프로그램 제작과 방송현업에서 배제시키고 조직에서 격리, 교육발령, 기존 업무와 무관한 곳으로의 강제전보하는 등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불법적인 블랙리스트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광범위한 부당노동행위가 사장을 중심으로 한 임원회의에서 직접 계획·관리되고, 지시 및 실행된 사실이 2014~2016년까지의 '임원회의' 관련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며 "회사와 임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감시해야 할 감사마저도 부당노동행위에 동조하거나 앞장서 노조탄압을 위한 각종 방안을 제안하는 등 내부통제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MBC 박영춘 감사는 2일 감사 결과를 MBC 경영진에 설명하고 이행조치를 요청했다. 이후, 5일 오후 2시 열리는 방송문화진흥회 정기 이사회에서 해당 내용을 공개 보고한다.
또한 박 감사는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관련자 2인과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관련자 4인에 대해 징계를 요청했고, 전직 임원들의 부당노동행위 관련 자료는 추후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다. MBC는 감사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한 검토조사를 마친 뒤 사규에 따른 조치를 진행할 계획이다.
감사국은 △정책 기획과 지시가 가능한 전직 임원들과 실행할 수 있는 일부 보직자로 제한해 로그 검색 대상자 최소화 △'성향, 명단, 리스트, 좌파, 카메라기자, 임원회의, 격리, 외곽조직, 배제' 등 검색 키워드가 메일 제목·첨부파일·출력 파일에 포함된 경우만 선별해 열람 등의 원칙을 정했다.
그 후, 임원회의 요약본 문건이 나타난 조모 전 비서실장, '카메라기자 인사이동' 문건이 나타난 권모 카메라기자, '아나운서 성향 분석' 문건이 나타난 최모 아나운서, 조사과정에서 연관성이 드러난 임모 카메라기자 4명만을 대상으로 삼았고, 위의 원칙에 해당하는 메일만 최종 열람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게 감사국의 설명이다.
열람 대상으로 최종 선정한 메일과 출력물에 대해서도 메일 또는 출력 로그의 출력물을 직접 인쇄해 제출하거나 감사인 입회하에 대상자와 함께 열람하는 방법 중 본인이 원하는 방법으로 열람 동의를 구했다고 밝혔다.
열람에 동의하지 않은 경우에도 열람 참여 감사인 수를 2명으로 최소화하고 참여 감사인에게는 정보 누설 금지를 서약하게 했고, 'MBC 정상화 문건'이 실행되고 부당노동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진 2011~2017년으로만 기간을 한정했다. MBC 감사국은 열람 대상자에게 충분한 의견 진술의 기회를 보장했고, 대상자라 해도 사생활 관련 메일은 열람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MBC아나운서협회 "블랙리스트 관련자 철저 조사해 징계해야"
협회는 "블랙리스트는 낙인찍기와 편 가르기의 전형이자 언론탄압의 가장 중대한 범죄행위다. 블랙리스트 실행 기간 국·부장 자리를 지켰던 신동호, 이재용, 하지은, 김완태 등은 이 모든 불미한 행동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몰랐다면 자신들의 무능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고, 알고도 방관했다면 당신들 역시 공범자이다. 회사의 의지라며 동료들을 내쫓고 겁박한 자들 역시 행동에 상응하는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 역시 같은 날 성명에서 "이제 MBC 몰락을 주도했던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역들과 그 동조자들이 답할 차례"라며 "정의의 법정에 서서 언론 본연의 기능을 유린한 대가를 온전히 치르길 바란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노조 활동을 탄압하고 노조 활동을 이유로 보복을 자행한 실정법 위반 행위일 뿐 아니라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MBC 구성원들을 격리·배제·해고하려 한 반헌법적 범죄 행위"라며 "진상규명을 위한 더 구체적이고 엄정한 추가 감사를 사측에 요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