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엄마에 안겨 젖 찾고 있던 아기
- 군인에게 머리 맞은 남동생, 결국 세상 떠나
- 어디에도 말 못했던 비극…"이제야 살 것 같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고완순 (제주 4.3 피해자)
여러분, 제주 4.3사건 기억하십니까? 1947년부터 1954년. 그러니까 약 7년여간 공권력의 무력 탄압 앞에 제주 인구의 10%. 그러니까 3만 명이 숨진 사건입니다. 그 3만 명 중에 33%는 어린이와 노인과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일이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지 70주년 되는 날이죠. 그 당시를 기억하려면 최소한 그때 8-9살은 넘었어야 된다고 보면 이제 목격자들이 그렇게 많이 남은 상황이 아닙니다. 오늘 그 생생한 목격자 가운데 한 분을 만나볼 텐데요. 당시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주민이 학살된 곳 북촌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북촌마을의 생존자, 올해 여든. 마을의 노인회장이세요. 고완순 씨 연결을 해 보죠. 어르신 안녕하세요?
◆ 고완순> 안녕하세요.
◇ 김현정> 70주년을 이제 하루 앞두고 있네요. 지금 제주 분위기, 마을 분위기 어떤가요?
◆ 고완순> 마을 분위기는... 우리 마을에는 기념관이 있는데 4.3이 억울하게 희생, 학살됐다는 걸 알고는 많이들 찾아 오고 있어요.
◇ 김현정> 하루에도 몇백 명이 올 정도예요?
◆ 고완순> 몇백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서부터 시작해갖고 이 조용하던 마을이 금년 70년이 되니까 굉장히 분주한 것 같아요.
◆ 고완순> 저는 9살이었어요.
◇ 김현정> 9살. 그 전부터 마을 분위기가 달랐습니까?
◆ 고완순> 46년도, 47년도... 아침이 되면 군인 차나 경찰차가 오면 젊은 사람들은 산에 가서 숨든지 방공호에 숨고 이런 탄압을 받았어요, 저희들이.
◇ 김현정> 젊은 사람들을 왜 그렇게 잡아가요, 경찰들이?
◆ 고완순> 인구가 갑자기 6만 늘었는데 이북에서 온 사람들이 있으니까 왜정 때 공출됐는데 또 막 쌀을 걷어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 반발로 시작해서 이제 4.3으로 들어가면서 막 어른들이 웅성웅성웅성 하고 있어요. 김녕에서 함덕으로 오는 군인부대에 군인을 싣고 가는 것을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군인을 두 명을 죽여버렸대요. 그 2명을 마을 유지들이 8명이서 우마차 2개에다가 하나씩 시신을 싣고 부대로 가져가니까 8명 중에서 경찰관 가족 한 사람은 살리고 7명은 다 죽였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군인을,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로부터 피격 당해서 숨진 군인을 실어다가 준 마을 사람을 '네들이 죽였지' 이러면서 총살을 해 버렸어요.
◆ 고완순> 그러면서 '이 마을은 빨갱이 마을이다.'
◇ 김현정> 그렇게 시작이 된 거군요.
◆ 고완순> 그래서 북촌 마을에서 4.3이 시작이 됐거든요. 그래서 이제 어머니랑 언니는 6살 더 먹은 우리 언니는 '우리도 오늘 북촌마을에는 다 살았어, 다 살았어.' 제주도 말로 막 그러는 거예요.
◇ 김현정> '우리 북촌 마을은 다 살았어, 다 살았어 완순아.' 9살짜리 잡고.
◆ 고완순> 바깥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막 어쩌고 울어요. 군인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들어왔어요. 들어와서 우리를 다 끄집어내서 학교, 집으로 끌고 가는데 덜덜덜덜 떨면서 끌려가 보니까, 운동장에 가니까.
◇ 김현정> 다 모여 있어요, 거기?
◆ 고완순> 다 모여서 운동장이 꽉 찼어요. 남동생은 어머니가 업고 언니하고 나하고 손잡고 네 식구가 끌려갔는데 중간에 보니까 총소리가 다다닥 나더니 앞에 남자들이 8명인가 몇 명 있는 사람이 다 이리저리 쓰러지더라고요.
◇ 김현정> 쓰러지는 걸 보셨어요.
◆ 고완순> 그걸 신호였었는지... 그다음에는 기관총이 불을 뿜었어요. 사람들 위로.
◇ 김현정> 두두두두두. 그냥 무차별?
◆ 고완순> 총을 막 사격을 하니까 저희들은 땅바닥에 막 엎어져서 기었어요.
◇ 김현정> 그랬겠죠.
◇ 김현정> 남자아이가… 그 장면이 기억이 나시는군요, 워낙 충격적이니까.
◆ 고완순> 2-3살 정도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리를 질렀어요, 제가. 지르니까 우리 남동생도 '어멍, 무섭다고 집에 가게, 집에 가게.' 제주도 말로 울어가니까 군인이 참나무 몽둥이를 가지고 '간나새끼, 지금 죽어도 죽을 거. 나중에도 죽을 거' 하면서 머리통을 2번을 가격을 했어요, 동생을.
◇ 김현정> 3살짜리를? 참나무 몽둥이로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죽을 걸' 하면서? 아이고. 어떻게 됐어요, 동생은?
◆ 고완순> 그러니까 3살먹은 애도 그때부터 찍소리도 안 하고 엄마 등에 그냥 콕 붙어 있어요. 아팠겠죠. 그 동생은 52년도 8월 달에 죽었습니다. 머리에 계속 물 차가지고 약도 하나도 못 쓰고. 그리고 나니까 총 소리는 멎었는데 하는 말이 제주도 갈 사람 따라나와라 그러니까 살려고 사람들이 그냥 막 짓밟으면서 뛰어넘으면서 남의 옷 잡아당기면서 그냥 막... 그러니까 저희 가족도 제주시에 가면 살려주는지 알고 따라 나가는데, 조금 있으면 총 소리가 타닥타닥 막 나는 거예요, 콩 볶듯이.
◇ 김현정> 그건 안 보였어요,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한테?
◆ 고완순> 잘라내서 밭으로 가가지고.
◇ 김현정> 아니, 분명히 차 타고 출발한다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총 소리가 다다다다.
◆ 고완순> 속인 거잖아요. 속인 거지.
◇ 김현정> 속인 거였어요?
◆ 고완순> 속여서 교대로 밭에 한 무리 끌어가서 죽이고 또 옴팡밭에 한 무리 끌고 가서 죽이고 하면서 계속 그렇게 끌려 나가면서 죽였어요. 몇 번이나 끌려 나갔는지는 모르겠는데 6살 더 먹은 언니가 어머니한테 '어머니, 어머니 사람들 끌고 나가 죽입니다. 우리 따라 나가지 마요.' 막 언니가 그렇게 엄마한테 말렸어요. 그때부터 우리 식구는 안으로 들어오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걸 느꼈겠잖아요.
◇ 김현정> 그렇겠죠. 이상한 걸 느꼈겠죠.
◆ 고완순> 그러면서 안으로 막 들어오는데... 마지막에는 한 오후 한 3, 4시쯤 됐는가. 저희 가족이 옴팡밭이라는 데 저희가 끌려갔습니다. 횡대로 세워놓고 총을 쏜 것 같아요. 엎어진 사람, 자빠진 사람, 머리통이 사타구니에 들어간 사람. 시신이 즐비하게 그냥 막 쓰러져 있는데 그다음에 저희들이 가서 앉았어요. 해가 구름에 싹 가렸다가 햇빛이 반짝하고 나왔다가 구름으로 들어가고 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흙이 피에 다 젖어서 햇빛이 나올 때는 흙이 유리알처럼 햇빛에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피가.
◇ 김현정> 피가 흥건해서.
◆ 고완순> 피가...
◆ 고완순> 뒤에서는 쇠소리가 절거덕절거덕절거덕 하면서 쇠소리가 막 나요.
◇ 김현정> 그거 뭡니까?
◆ 고완순> 총알을 집어넣는 소리인지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돌아보지도 못하고 무서워서.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 고완순> 엄마 손만 꽉꽉 잡고 잡고 이랬는데 뭔 지프차 차 소리도 나고 고함지르는 소리 같은 게 들렸거든요. 그 대장 차가 오면서 사격 중지 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그러더라고요.
◇ 김현정> 마침 대장이 와서 사격 중지?
◆ 고완순> 네. 군인들이 하는 말이 '이 간나새끼들 파리새끼보다 목숨이 더 길다. 40명인지 30명인지 끌려간 사람은 다 살았어요.' 우리하고 끌려간 줄은.
◇ 김현정> 그렇게 해가지고 할머님께서는 살아남으셨지만 돌아가신 분이 어느 정도나 되는 거예요, 마을에.
◆ 고완순> 하루에 죽은 것이 한 380명. 며칠 사이로 죽은 사람이 한 600명은 될 겁니다.
◇ 김현정> 살아남은 사람은 그럼 몇 이나 됩니까?
◆ 고완순> 살아남은 사람은... 그 숫자는 잘 모르겠어요.
◇ 김현정> 그날은 그렇게 철수를 했는데 그다음에 또 온 거예요?
◆ 고완순> 또 2차로 이번에는 차 다니는 길 말고 중간길이었는데 거기 가서 이번에는 종대로 앉혀놓고 '너 나와, 너 나와.' 해서 2차로 또 죽였습니다.
◇ 김현정> 아니, 그다음 날 근데 다 도망가면 됐잖아요. 어디 도망갈 데가 없어서 마을에 다 남아 계셨던 거예요?
◆ 고완순> 그 사람들이 누구냐... 어린 사람하고 여자들이잖아요. 그리고 노인네들. 마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요. 계엄령이 선포가 돼서.
◇ 김현정> 나가도 죽고 안에 있어도 죽는 거네요.
◆ 고완순> 그러니까 도망을 못 가니까 이제 하라는 대로 한 거죠.
◇ 김현정> 그렇군요.
◆ 고완순> 그때부터는 배고픔에 시달리는 거예요. 먹을 게 없어서 풀 다 타버리고. 양식 같은 거 땅 파서 묻어놓은 것들은 산 사람들이 배고프니까 밤중에 또 내려와서 그런 거 훔쳐가버리고. 낮에는 순경 데려와서 이제 또 막 붙잡아서 반동 온다고 감옥에 잡아놓고 이런 세월을 이제 보내면서 살았죠.
◇ 김현정> 아니, 그러니까 이건 살아남은 사람들도 살아도 산 게 아니에요.
◆ 고완순> 그러고 4.3 겪고 나니까 장티푸스로 병이 와서 전염병.
◇ 김현정> 장티푸스가 또 한 번 쫙 돌았군요.
◆ 고완순> 그런 거 와서 또 마마 있잖아요, 곰보 되는 거, 천연두.
◇ 김현정> 천연두가 또 돌고.
◆ 고완순> 그런 거 와서 또 어린애들도 막 죽고...
◇ 김현정> 그러니까 그 마을의 원한이라는 게 그런 걸 목격한 분들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전해 내려오고 하니까.
◆ 고완순> 그런데 그 말을 못 했잖아요. 그런 말했다가는 연좌제에 걸려서 취직도 못 하죠. 공부해 봐야 군인도 제대로 못 가지. 그러니까 우리 이런 말을 못 했거든요.
◇ 김현정> 그러니까 '내가 이런 일을 내가 당했소.'라고 시원하게 공개적으로 얘기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됐다는 얘기예요.
◆ 고완순> 얼마 안 됐잖아요. 노무현 대통령 때 이제 사과하면서 좀 이제 밝혀지고 이제는 살만 한 것 같아요. 속에 거 털어놓으니까.
◇ 김현정> 이제야... 속에 있는 거 시원하게 이제야 얘기할 수 있어요.
◆ 고완순> 꿈도 다 가져가버리고 공부하는 시기도 다 놓쳐버리고 밥도 너무 굶어서 저는 배고픈 것이 트라우마거든요.
◇ 김현정> 저희들 이 상황, 이 사실들 억울한 분 한 분도 없도록 세상에 잘 알리겠습니다.
◆ 고완순> 좀 제발 좀 그렇게 해 주시고...
◇ 김현정> 왜 선량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특히 아이들이, 노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 고완순> 영문도 모르고. 뭐 압니까?
◇ 김현정> 그러니까요. 오늘 귀한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4.3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고완순> 고맙습니다.
◇ 김현정> 4.3의 생존자십니다. 당시 나이 9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살 당한 북촌마을의 고완순 씨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