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책임? 美책임?···인내심 갖고 '상호신뢰' 구축해야

"역시 北 믿을 수 없다" 여론···하지만 北책임보다는 '불신'의 문제

사진=CCTV 화면 캡처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한미가 평화실현을 위한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되는 양상이다.

이 발언의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형식적 조치를 취하며 보상만 받고 비핵화를 하지 않는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이란 비판 등 대북 강경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합의와 파기를 반복하며 '도돌이표'를 그려온 북미 회담의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북핵 문제는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불거졌다. 이를 둘러싸고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오는 등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미국의 북한 영변 폭격까지 검토되던 중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겨우 위기가 사그러들었고, 북미는 고위급 회담을 통해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합의를 도출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NPT복귀와 핵물질 시설 폐기를 하는 대신 미국은 관계정상화와 경수로 건설·중유 지원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추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미국이 중유 공급 등 약속했던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제네바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

이에 대해 북미는 아직도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책임이 크지만 북한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북한의 몰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 역시 약속 이행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유화적 분위기에 역행했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북한이 보상만 받고 그 다음 행동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미국은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는 '북한은 무조건 말만 하고 약속 이행을 안한다'는 프레임에 집어넣고 설명을 하려 한다. 따져보면 북한의 반대쪽에서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더이상 나아가지 않았다는데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매 순간 북미 간 '상호 간 신뢰'가 없었던 점이 사태를 급속도로 악화시킨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같은 역사는 계속 반복됐다. 2005년 북미는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지만,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으로 파기됐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달갑지 않아 했고, 6자회담의 틀 안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하지만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BDA)이 북한 불법자금을 세탁하는 곳으로 유용됐다고 의혹을 제기했고, 미국의 제재에 반발한 북한이 무력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이 단계적 보상이 전제된 단계론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볼 수만은 없는데, 불신이 불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북중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문구를 보면 '단계적·동시적' 조치의 주체는 한국과 미국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있어 단계적 조치를 취한다고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도 북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발언이, 비핵화문제의 순차적·단계적 해법이 과거 북한의 비핵화 단계에 따른 보상을 지급하는 식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세하게 잘라서 조금씩 나갔던 것이 지난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두 정상 간 선언을 함으로써 큰 뚜껑을 씌우고 그 다음부터 실무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핵화 문제에 대해 양 정상 차원에서 '톱다운' 형식의 결단을 내리되 실무적인 부분을 단계적으로 풀어나갈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 외교소식통은 "비핵화 하나가 아니라 평화체제 해법 등 복합적으로 논의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단계적으로 하지 않을 수 있겠나. 미국도 북한에 대해 체제보장을 한번에 할 수 없으니 단계적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과거 사례를 두고 또다시 "북한은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 불거지고 있는데 대해 '상호 신뢰 회복'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번에는 북미가 강대강으로 맞붙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외교소식통은 "현 상황은 그간 대화 성사에 주력해 온 각국이 본격적인 비핵화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과정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북한 등 각 북핵 당사국에 '인내'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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