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상> 단역배우 자매 잃은 母 "가해자들 쓰는 회사, 벼락 맞아야"
(계속)
둘째 딸 다민(가명) 씨는 언니가 가는(죽은) 날 샤워를 했느냐고 대뜸 물었다. 했다고 하니 그날따라 아주 길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학교 갈 때 매번 했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은 없었다. 대신 먼 데라도 가는 사람처럼 장 씨에게 '20년 후에 만나자', '30년 후에 만나자'는 말만 남겼다. 그날 수업은 오후 5시 30분에 끝난다고 했다. 하지만 장 씨는 그 시각이 되기 전에 다민 씨의 사망 소식을 들어야 했다. 첫째가 떠난 지 6일 후인 2009년 9월 3일의 일이다.
기자를 처음 만났던 날, 장 씨는 겨울에도 방 불을 때지 않는다고 말했다. 맨발로도 전혀 춥지 않단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딸 둘이 죽어 봐요. 가슴속에 천불이 나서 하나도 안 추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헛헛한 속을 달래기 위해 맥주를 마실 때도, 냉동실에서 꽁꽁 얼렸다가 갓 꺼낸 아주 찬 맥주를 즐긴다고 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새 두 딸을 잃고, 뇌출혈 투병 중에 병세가 나빠져 남편까지 세상을 떠난 게 벌써 9년 전이다. 하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길 가다가도 '엄마'라는 소리를 들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뒤를 돌아본다.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위로한답시고 '이제 지난 일 아니냐', '그만 잊으라'고 하지만, 그 말이 장 씨에겐 가장 아프다.
최근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이 다시 관심받고 있다. 2004년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만난 반장 등 관계자 12명에게 성폭력을 당한 첫째 딸이 5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6일 만에 둘째 딸이 뒤를 따른 사건이다. 지난 3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이들의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두 딸의 어머니인 장연록 씨가 1인 시위를 재개하면서 수면 위로 떠 오른 것이다. 이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비롯한 다수 언론에서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다. 덕분에 마감을 8일 남긴 25일 현재 청와대 청원에 참여한 사람은 19만 7천 명을 넘어섰다. 목표치인 20만 명이 되려면 아직 3천 명이 더 필요하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14일, 15일, 19일, 25일 네 차례 장연록 씨를 만났다. 사건의 개요는 언론에서도 수차례 보도된 만큼, 최근의 이슈에 집중했다. 가해자 12명의 실명을 걸고 1인 시위를 했다가 명예훼손 소송(지난해 '무죄' 선고가 났다)까지 겪었던 장 씨가 왜 다시 거리로 나와 억울한 사연을 알리려고 하는지, 청와대 청원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는지, 그가 원하는 이 사건의 '결말'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가해자를 계속 현장에 두고 있는 기획사와 이를 방조하는 방송사에 하고 싶은 말에 귀 기울였다.
◇ 다시 1인 시위 나선 이유 … "미투가 큰 힘이 됐다"
장 씨는 "강간하고 살인한 자들이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데 내 두 딸의 영혼은 하늘을 맴돌고 있다"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다연 씨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 12명의 실명도 함께였다. 12명 중 6명이 장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법원은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을 "국가 공권력의 총체적 실패"라고 규정하며, 장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 씨는 무죄 선고를 받은 지 1년여 만인 지난 7일부터 1인 시위를 재개했다. 이번엔 그들의 실명은 없다. 그는 "기획사 반장들 단역배우 강간 성폭력 두 자매 자살"이라고 쓰인 몸자보를 걸치고 '청와대 청원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손팻말을 든 채 시민들을 만난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유인물을 돌리던 지난 19일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추운 날씨 탓인지, 행인들의 손은 주머니 속에 있었다. 장 씨는 "날이 좋아야 더 잘 받는데…"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이번에는 여대 쪽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장 씨는 "하다 보면 엄마아빠들이나 젊은 여자분들은 받아가는데, 젊은 남자들은 유인물을 거의 안 받는다. 가자미눈으로 흘깃 볼 때도 있다"며 "큰딸이 여대를 나왔는데 혹시 여자분들이 더 동질감 느끼고 반응해주지 않을까 해서…"라고 말했다. 동덕여대에 3번 갔는데, 갈 때마다 학생들에게 간식거리를 받았다. 청원 서명을 부탁하자 "벌써 했어요"라는 답도 자주 들었다.
◇ 무력했던 '공권력', 이제라도 바로잡기 위해 '청와대 청원'
장 씨는 인터뷰 내내 성폭력 가해자만큼이나 사건을 '뭉개려고' 했던 검경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경찰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애들은 형사가 죽인 것"이라는 장 씨의 말은 다연 씨의 성폭력 사건을 대한 경찰의 관점과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처음 종로서에서 '사건이 된다'는 말을 듣고 진행했지만, 영등포서로 이관된 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달아 벌어졌다는 게 장 씨의 설명이다.
장 씨는 가해자들이 여러 명이고, 그들이 여의도 등지에 있는 기획사에 소속된 현장 반장들인 만큼 '수사 편의'를 위해 서가 바뀌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조모 형사는 증거가 될 만하다면 몇 트럭이라도 가져오라고 했다. 장 씨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정신과 치료 경과 노트, 다연 씨가 피해 사실을 기록한 일기 등 닥치는 대로 모아 갖고 갔다. 내용을 보지도 않고 서류뭉치를 탁탁 두드리며 "이게 무슨 사건이 되느냐!"고 윽박지르는 조 씨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던 말은 조롱이었음을.
장 씨가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경찰의 2차 가해'는 너무나 일상적이었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건도 안 되는데 왜 이런 거로 귀찮게 하느냐'며 피해자들에게 무안을 주는 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성폭력 피해를 본 후 심신 미약 상태였던 다연 씨가 고소 취하서에 지장을 찍도록 강제하거나, 이성인 성인들의 문제를 갖고 고소하면 업무가 마비된다는 식의 힐난이 나왔고, 당시 상황을 재현해 보라면서 수치심을 줬다.
장 씨는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진술해야 했던 딸을 더 볼 수 없었다. 그나마 사람이 적은 저녁때 조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녁 조사를 받던 어느 날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이들이 와서 "어이, 아가씬지 아줌만지 12명 상대한 얼굴 좀 봅시다" 하고 시비를 걸었다. 큰딸이 쓴 모자를 벗기려고도 했다. 이런 고통을 매분 매초 겪으면서 사건을 진행하기엔 모두가 너무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가해자들은 '집에 불을 지르겠다', '일가족을 다 죽여버리겠다' 등 협박으로 다연 씨를 옥죄어오고 있었다.
결국 사건 발생 2년 만인 2006년 검찰까지 올라간 형사소송을 취하했다. 장 씨는 검찰 쪽의 강요도 있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는 "그때 큰애는 심신미약, 항거불능 상태였다. 하루종일 약을 이만큼씩 먹었다. 설령 스스로 취하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해도 사건을 진행했던 내게도 연락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한 번 취하한 형사사건은 재고소를 할 수 없었다. 손해배상 청구라는 민사소송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공소시효 만료로 더 이상 '법적 구제'가 어려운 상황. 그런데도 청와대 청원(링크)을 시작했다. 피해자와 가족의 삶은 처참히 무너졌고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일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20만 명이 안 되더라도 괜찮아요. 10만 명이 서명하면 그만큼은 우리 딸들 사연을 알게 되잖아요. 법적으로 방법이 없다는데, 특별법을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왜 정치인들은 우리 같은 서민들한테는 특별법을 만들어 주지 않느냐는 거죠."
장 씨는 가해자들이 여전히 현직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 바닥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얘네들을 채용하는 기획사는 정말 벼락을 맞아야 한다. (업계에서)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판결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만큼, 이번에는 가해자 12명의 실명을 밝히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범죄에 연루된 인물을 촬영 현장에서 솎아내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수준의 요구가, 사건 발생 14년 후에도 외쳐지고 있다. 장 씨는 12명 중 7명이 여전히 업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왜 방송사가 문제 있는 기획사에 계속 일을 줄까. 그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유착 관계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장 씨는 딸들이 했던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 환경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같이 생활해 본 적도 있다. 보조출연자 중에 당시 사건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증언해 줄 사람은 없었다. "우리 애들 사건을 알지만 일거리 떨어질까 봐 얘기 못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장 씨는 방송사에도 쓴소리했다. 그는 "(방송사가 가해자들을) 모를 수가 없다. 어떻게 게네들을 모를 수가 있나. 제발 일을 주지 마십시오. 깨끗하게 사십시오. 유착 관계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이런 살인자들한테 일거리를 주지 마십시오. 어떻게 (사건을) 알면서 그럴 수가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해자가 열둘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들이 한 일이 범죄라는 걸 인식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직접 살인한 건 아니지만 세 사람(다연, 다민, 두 딸의 아버지)을 죽인 거나 다름없어요. 가정은 풍비박산됐고요. 감싸지 말라는 겁니다. 왜 살인자를 감싸나요? 범죄라는 걸 알고 멀리하세요.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잊어라', '너무 멀리 왔다', '둘이 죽으나 하나 죽으나 똑같아' 이 세 마디를 절대 제게 하지 마세요. 그걸 위로라고 하지 마세요. 어떻게 생각이 안 나요. 너무 그리워요. 못 잊어요. 잊으라는 말, 절대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