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성폭행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공소시효의 함정

"성범죄 공소시효 연장 법안 서둘러 처리해야"

극단 소속 여배우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소환 된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성폭행은 아닙니다"

지난달 2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이윤택씨(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는 성폭행 의혹을 부인해 피해자들을 공분하게 만들었다. 관계자들과 미리 짜고 연습하며 기자회견을 마치 연극처럼 준비했던 이씨의 뻔뻔함에 전 국민은 분노했고, 참고 있던 피해자들이 추가로 미투를 이어갔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3월 21일 경찰은 이씨에 대해 수사를 벌인 끝에 상습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여성 연극인 17명이 고소에 나섰고 199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62건의 범죄 건수가 신고됐다. 하지만 중형으로 처벌해야 할 성폭행 혐의는 빠져있었다. 바로 공소시효 때문이었다.

◇ 공소시효 문턱에 걸린 이윤택, 경찰도 아쉬워 해

애당초 이씨의 범죄는 공소시효 문제로 제대로 된 죗값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법조계의 우려가 있었다. 성범죄 사건은 2013년 6월에야 친고죄 규정이 폐지돼 그 전에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당시 6개월 이내 신고가 없었다면 처벌이 불가능했다.

다만, 상습범의 경우 2010년 4월부터 법령이 바뀌어 친고죄 이전 범죄여도 처벌받을 수 있다.


이에 경찰은 이씨를 상습범으로 보고 성폭행(강간)이나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적용하기 위해 법리 검토를 벌였지만 결국 적용하지 못했다. 2010년 4월 이후에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적용할 수 있는 건이 1건 있었는데 추가 연속 범죄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김모씨의 경우에 주로 2010년 4월 이전에 범죄가 있었고 2010년 4월 이후에는 1건이 있었지만 김씨에게 이어진 추가 범죄가 없어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적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씨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2005년 낙태를 한 이후에도 성폭행이 이어졌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하지만 공소시효의 함정으로 이 부분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밖에 2001년 19살, 2002년 20살때 두차례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A씨의 경우에도 미성년 성범죄를 적용해도 시효가 만료돼 처벌이 어려웠다.

영장신청을 한 경찰도 이 부분은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법적으로 판단할 때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 미투 이후 제도개선 중요, 공소시효 연장·폐지 법개정 서둘러야

(사진=자료사진)
이윤택 사례처럼 공소시효로 성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법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성가족부,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부처는 지난 8일 합동 기자회견에서 간음죄와 추행죄의 법정형을 상향 조정해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미투 운동 이후 권칠승, 나경원, 손금주, 오신환, 이언주, 이명수, 황주홍 의원 등이 성범죄의 법정형을 높여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법을 잇따라 발의한 상태이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경우 '스쿨미투'를 지원하기 위해 피해자가 미성년일 때 발생한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회에는 관련 법이 쌓여있고, 정부도 공소시효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추진 속도는 거북이걸음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소위에는 상정되지 않았다. 여가부 관계자는 "성범죄 법정형 상향의 경우 정부 입법으로 할지, 의원 입법으로 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많이 발의돼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 단체들은 하루라도 빨리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성범죄 공소시효 연장은 여성단체에서 수년간 법개정을 촉구해왔지만 입법이 좌절되고 법무부가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라며 "성폭력 범죄를 처벌하기에는 현행법의 한계가 심각하기 때문에 서둘러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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