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는 숨은 가해자를 들춰내 사회 구성원들에게 성범죄의 위험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일부 여성 피해자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이 늘어나는가 하면 일각에선 남·녀 성대결 양상으로 변질될 조짐이 보여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부작용 탓에 같은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미투에서도 소외되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바로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이른바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탓에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조차 힘들다고 토로했다.
◇ '남자가 성폭력을 당해?'…피해 폭로 걸림돌
CBS 노컷뉴스는 최근 SNS를 통해 미투에 동참한 A(23) 씨를 만났다.
A 씨는 7년 전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동성 친구들로부터 약 9개월간 성폭력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동급생 4명이 강제 추행을 일삼거나 유사 성행위를 강요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린 지도 2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에게 걱정을 안길까봐 염려됐고 피해가 창피하기도 해서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또 당시에는 학교 내에서 믿고 의지할 만한 상담 시설도 없었던 탓이다.
A 씨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용기를 내기 힘들다. 남자도 성폭력을 당하냐는 식으로 비아냥대는 분들이 아직까지 많지 않냐"며 고개를 떨구었다.
A 씨는 "성장이 더뎌 키가 작고 몸이 허약한 저는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며 "미투 운동이 시작된 후 '남성성'이라는 고정관념이 저를 침묵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낙인을 찍으니 앞에 나서기가 힘든 것"이라며 "남성과 여성이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조금 다르겠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받는 고통에는 남녀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남성들에게 남성성에 대한 강요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소장은 "남성이 나도 피해자라고 고백하는 순간 곧 남성성에 대한 부족함이나 상실로 비춰지기 때문에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A 씨는 미투 이후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겪은 수많은 남성들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충격적인 것은 피해를 당한 공간 대부분이 중·고등학교나 대학, 군대 등 집단 생활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점이다.
주위 인물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인지하거나 직접 목격했지만 방조하는 바람에 피해가 더 장기화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A 씨의 경우에도 대부분 교실에서 성폭력을 당했지만 누구 하나 말리는 이가 없었다.
이처럼 성범죄를 '방조'하는 현실 탓에 성폭력을 당하는 남성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해바라기센터에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한 남성 피해자 수가 계속 늘었다.
지난해 접수된 남성 성폭력 피해자는 1117명으로 2015년 1019명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대구와 경북의 경우, 여성 피해자 수는 최근 3년간 계속 줄어드는 데 비해 남성 피해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시스템 정비 보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A 씨를 괴롭히던 이들은 9개월이 지나서야 만행을 멈췄다.
보다 못한 한 동급생이 담임 교사에게 A 씨가 당한 일을 알렸고 이를 전해들은 선생님이 가해자들에게 경고를 날린 덕분이었다.
하지만 A 씨는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가해자 처벌은커녕 학교가 진상조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사태를 마무리 한 탓이다.
A 씨는 학년이 바뀌고도 계속 가해자들과 같은 반이 돼 고통스러운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물론 7년이 지난 지금은 이보다 나은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피해 사실을 알리면 즉각 전문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고 학교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등 조치에 나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
전국성폭력상담소연합회 김미순 대표는 "미투만 봐도 피해자에 대해 악성 댓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니 누가 용기를 가지고 말할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피해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미투를 성대결로 인식해서는 안 되고 피해자를 탓하는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