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특성을 이용해 사체를 쓰레기로 위장해 수거한 뒤 소각했고, 살해한 동료를 사칭해 휴직계를 내고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는 등 완전범죄를 꿈꿨다.
하지만 동료 명의로 대출 등을 받아 흥청망청 쓴 유흥비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 '가발 때문에' 우발적 범행 주장
전북 전주시 완산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인 이모(50) 씨와 동료 A(59) 씨는 나름 절친한 친구였다.
같은 직장을 다닌다는 것 외에 대인관계가 폭넓지 않고, 이혼 뒤 혼자 살고 있으며, 술을 좋아한다는 등 공통점이 많았다.
지난해 4월 4일 저녁 전주시 완산구 이 씨의 원룸에서 벌인 술판도 둘 만의 흔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이 씨는 A 씨와 주먹다짐을 벌였고 급기야 목을 졸라 A 씨를 살해했다.
경찰에서 이 씨는 "가발을 잡아당기며 욕설을 해 홧김에 그랬다"고 진술했다.
2003년 무렵부터 15년가량 이어온 우정은 살인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 '빚 때문에' 치밀한 범행 추정
이 씨는 A 씨의 시신을 자신의 원룸에 두고 있다 다음날인 5일 오후 6시쯤 50ℓ 들이 검정 비닐봉투 15장을 샀다.
상반신과 하반신에 각각 비닐봉투를 씌운 뒤 이불로 감싸고 비닐봉투를 덧씌워 쓰레기로 위장했고, 자신의 청소차량 노선에 있는 생활쓰레기 배출장소에 가져다놨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튿날인 6일 오전 6시 10분께 청소차량 운전자인 이 씨는 동료들을 거들어 A 씨의 사체를 감싼 쓰레기봉투를 차량에 실었다. 사체는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전주시내 한 소각장으로 옮겨졌고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사건이 있기 전 이 씨는 A 씨에게 8700여만 원을 빌린 상태였다. A 씨를 살해한 뒤에도 이 씨는 A 씨의 신분증과 신용카드,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대출과 신용카드 결제 등 5700여만 원을 썼다.
전주완산경찰서 관계자는 "이 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있지만 채무관계 등에 의한 계획된 범행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며 "사체 행방을 찾을 수 없지만 시신훼손 가능성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숨진 A 씨는 이혼 뒤 혼자 살아왔고 가족과 왕래도 거의 없었다. 사망 8개월만인 지난해 12월 29일 A 씨의 아버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이때까지 아무도 A 씨가 숨진 사실을 몰랐던 건 외톨이였던 탓도 있지만 이 씨의 치밀한 은폐 노력 때문이기도 했다.
범행 40여일 뒤인 지난해 5월 16일 이 씨는 A 씨를 사칭해 완산구청에 휴직계를 냈다. 경기도의 한 병원장의 직인을 위조한 뒤 허리디스크 등에 대한 날조한 진단서를 팩스로 직장에 보냈고, A 씨인 것처럼 위장해 전화로 휴직을 신청했다.
생전에 A 씨는 딸과 간혹 연락하며 정기적으로 용돈을 보냈다. 이 씨는 A 씨의 딸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정기적으로 50~60만 원을 계좌로 송금했다.
누군가 A 씨 휴대전화로 연락해 오면 A 씨인 것처럼 연기를 벌였다. 1년 가까이 벌인 위장극은 성공적이었지만 유흥비가 발목을 잡았다.
올해 3월 5일 A 씨의 딸은 A 씨 앞으로 날아든 채무독촉장과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봤다. 유흥주점에서 한 번에 200만 원을 결재하는 등 평소 A 씨의 씀씀이와는 다른 내용이 많아 경찰에 알렸다.
이튿날 경찰은 이 씨를 참고인 조사했고, 귀가 뒤 이 씨는 도주하면서 스스로 범인임을 밝혔다.
전주완산경찰서는 19일 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이 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씨의 원룸을 철저히 조사했지만 혈흔 반응 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씨의 차량 트렁크 속 가방에서 A 씨의 혈흔 반응이 나왔다.
이미 사체는 소각됐을 가능성이 큰 상태에서 경찰은 이 씨가 A 씨의 시신을 훼손했을 가능성 등에 대한 수사를 추가로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