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처장은 이날 자신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요청한 홍준표 대표에게 통화와 문자 메시지로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문자를 통해 “대표님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한 점을 애석하게 생각한다”며 “혹시 이번 일로 대표님과 당에 누가 됐다면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지식인 노릇을 하기 참으로 어렵다)이라는 매천 황현 선생의 외침이 뇌리를 스치고 있다”며 “건투하시길 빈다”고 덧붙였다.
설 연휴 직후 홍 대표로부터 출마요청을 받은 이 전 처장은 당의 종합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출마 여부를 고심해왔다. 그는 불출마를 결정하기 전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시민사회 원로들이나 가족 등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당 지지율도 바닥까지 갔다. 결국 어려우니까 내게 요청한 것 아니겠느냐. 그러나 나는 정치공학적으론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불출마로 입장을 굳힌 직후 통화에선 “시민사회에서 재야 활동을 하는 게 제 입장에선 입자를 더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결국 한국당 후보로 나섰을 경우 경쟁력을 갖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 출신의 이 전 처장을 앞세워 여권의 유력후보이자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인 박원순 시장과의 ‘양자 빅 매치 구도’를 짜보려던 홍 대표로선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홍 대표는 그간 이 전 처장에 대해 “영입인사는 경선을 하지 않고 전략공천을 한다는 원칙을 이미 발표했다”며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왔었다.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 전 처장에 대한 홍 대표의 ‘전략공천 카드’를 두고 당내에선 인재난에 따른 고육지책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 전 처장마저 불출마 입장을 굳히면서 인재들이 출마를 기피하는 당의 답답한 상황이 더욱 표면화 된 한편, 인재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홍 대표의 리더십에도 금이 갔다는 평이 나온다.
앞서 한국당 지도부는 홍정욱 헤럴드경제 회장과 장제국 동서대 총장,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을 주요 지역 광역단체장 후보군으로 염두에 뒀었지만, 이들 모두 난색을 표한 바 있다. 한국당의 남은 서울시장 후보군으로는 김병준 전 부총리가 거론된다. 하지만 그 역시 출마 여부에 대해선 아직까지 정확한 입장을 밝히진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