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문소리의 '위드유'에 돌을 던지나

문소리 '미투' 운동 지지에 '갑론을박'…"여성 배우에게만 냉정한 잣대"

배우 문소리가 12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 토론회’ 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우리는 가해자, 피해자이거나 방관자, 암묵적 동조자였거나 아니면…그런 사람들이었음을 영화인 전체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12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에 참석한 문소리가 '미투' 운동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인지도 높은 유명 여성 배우가 공식 석상에서 '성평등'하지 못한 국내 영화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계를 포함, 공연계에서 번져나가기 시작한 '미투' 운동은 최근 영화계까지 강타했다. 김기덕 감독, 조근현 감독, 배우 조재현, 오달수 등이 모두 '미투'에 용기낸 이들의 폭로에 의해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의혹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아직 공연계보다는 '미투' 운동에 대한 참여와 지지가 활발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인지도 높은 배우들은 '미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또 함부로 지지하지 않는다. 종종 인터뷰를 통해 질문을 받으면 답하지만 스스로 먼저 의견을 밝히는 일은 거의 없다. 남성 배우로는 이순재 그리고 여성 배우로는 문소리가 이제 막 말문을 텄을 뿐이다.

"할리우드와 비교해 국내 '미투' 운동은 남녀를 불문하고 국내 유명 배우들이나 감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질문에 문소리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 사회 권력, 조직, 위계질서 문화의 특수성이 (영화계에서) 더욱 심화돼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계 내 뚜렷한 권력관계, 위계질서, 그리고 여성 영화인의 입지 등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열악하기 때문에 폭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트라우마나 상처가 만만치 않아서 조심스러워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문소리가 목소리를 낸 것은 상당히 용기있는 결단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비록 문소리가 영화계에서 여성 영화인들을 위한 여러 활동에 참여하며 소신있게 주장을 펼쳐온 점을 감안한다해도 말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문소리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문소리가 그 동안 해왔던 여성 중심 영화의 부재에 대한 문제 제기, 여성 배우 역할에 대한 고민 등과 '미투' 운동은 사실 그 무게부터 다르다"며 "문소리는 자신이 가진 영향력과 그것이 어떻게 적재적소로 쓰여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상황 속에서 침묵하지 않고 '미투' 이후의 변화를 위해 고민하고, 영화계 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성권력을 공론화시키는데 동참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후, 일각에서는 문소리가 한 발언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이들은 이미 20년 가까이 영화계에 몸 담은 문소리가 영화계 실태에 대해 알지 못했겠느냐며 '방관자'로 규정하고,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문소리에게 폭로를 촉구하기도 했다.

한 네티즌(아이디: rktn****)은 "이런 식의 물타기 양비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고 영화 감독 남편과 결혼한 분이 이제와서 그 바닥 몰랐을까 궁금하다"면서 "지금까지 방관해오다 영화계 전체의 문제인 양 말하지말고 알고 있는 갑질의 감독과 동료 배우를 폭로하는 게 나아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현재 유명 여성 배우들이 '미투' 운동에 동참하거나 지지할 수 없는 이유를 연예계 성상납 문화로 꼽으며 '떳떳하지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문소리가 목소리를 낸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미투' 운동에 보탬이 되었다는 의견으로 팽팽히 맞섰다. '미투'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여성 배우인 문소리에게 보다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는 것을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네티즌(아이디: kogy****)은 "용기있고 소신있는 발언한건데 '너도 아는게 많을텐데 말해봐라', '왜 이제 와서 그러냐'라니…. 저 한 마디를 하기까지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텐데 하여간 '여자' 배우에게는 한없이 냉정한 잣대를 들이민다"라고 문소리를 옹호했다.

얼마 전 '미투' 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배우 이순재에 비교해 비난 여론이 많은 것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성 배우들을 잠재적 피해자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대다수 침묵하는 남성 배우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 네티즌(아이디: fpsk****)은 "이순재가 '미투' 운동 지지한다고 할 때 배우님 멋있다고만 말하더니 여배우가 '미투' 운동 지지 입장 표할때는 늘 '당신도 방관자', '당신도 폭로해라'라고 비난한다"며 "여배우들은 모두 잠재적 피해자라고 성폭력 피해를 말하라고 압박한다. 그렇게 치면 모든 남배우들도 방관자이자 잠재적 가해자이다. 남배우들에게는 왜 비난하지 않는가? 당신 자신이 이 순간에도 성차별적임을 인정해라"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네티즌(아이디: ejrw****)은 "이순재처럼 '미투' 운동 지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바닥에서 진짜 잔뼈가 굵은 게 누구냐. 몇십년동안 활동하던 분이 성폭력 만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폭로 안하는 이유가 뭘까? 여배우만 만만하게 보고 폭로하라고 압박하지 말라"고 받아쳤다.

아울러 연예계 성상납 문화의 본질적 문제 또한 그런 문화를 요구하는 권력자들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한 네티즌(아이디: sej8****)은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앞길을 생각해 넘어가 대가를 받은 여성들'을 비판한 댓글에 "자신의 앞길을 생각해서 넘어가니 (여성 배우들이) 암묵적 방관자라고? 애초에 '갑'의 위치를 이용해 성범죄 저지르는 남자들이 문제지 '을'이라 성범죄당하고도 항의도 못하고 넘어간 피해자들이 잘못한거냐"고 따졌다.

실제로 연예계에서 여성 배우들은 유달리 더 성적으로 소비되고, 쉽게 대상화되며 인격체보다는 외적으로 우수한 상품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의식적 기반과 구조 속에서 권력의 우위를 점한 남성 종사자들에게 여성 배우들이 제대로 된 인격적 대우를 받기란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문소리의 말이 틀린 게 없다. 결국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이렇게 '미투' 운동이 번진 것은 곪아왔던 상처가 한 번에 터진 셈이다. 그 동안 여성 배우들은 자신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며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들을 참아왔다"면서 "결국 폭로 이후 '꽃뱀'으로 의심 받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혀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것도 여성 배우 쪽이 아닌가. 지금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각종 폐해를 업계 종사자들이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것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들대로, 잘못됐다고 느낀 이들도 그들대로 침묵하고 방관했기에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본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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