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비핵화 최종 단계의 보상으로 평화협정 체결이 거론됐던 과거와는 달리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협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등 북핵 문제 해결 접근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 청와대 "남북정상회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문제 등 대형 이슈 중심으로"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정상회담 이후에 바로 북미 정상회담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나 평화의 문제 등 본체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형 이슈 중심으로 논의가 빠르게 전개돼야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와 연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축'이나 '경제공동체 구상',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을 위한 의제도 중요하지만 곧바로 이어질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미 정상회담 핵심 의제가 될 '비핵화'와 관련해 그동안 특사를 통해 간접적인 의지는 확인했지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필요가 있고, 이를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끌어 내겠다는 게 청와대의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대학원대학 양무진 교수는 "남북과 북미 모두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논의를 집중하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기존에 논의됐던 남북 간 현안 의제 외에 북미정상회담으로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포괄적인 '평화 선언'이 있어야 된다"며 "비록 북미정상회담 의제이긴 하지만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적극성을 갖고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파격적이고 독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만큼 극적으로 성사된 정상회담에서 혹시라도 엇박자가 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이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서 미리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김 위원장으로부터 의미 있는 발언이나 선언을 이끌어내서 북미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다잡아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 징검다리"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나 평화체제 구축 문제 등과 관련해 어느 선까지 논의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일단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서는 지난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10.4 남북공동선언' 내용이 참고될 필요가 있다.
선언문에 따르면 남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처럼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서는 큰 원칙과 방향은 남북한이 이미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세 번째로 성사된 정상회담에서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핵화 의제는 더 복잡하다. 북한 입장에서 북미 정상회담때 사용할 핵심 카드를 남북정상회담에서 다 써버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계속 밝혀온 이상 단순히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선언 이상의 무언가를 이끌어 내야 한다.
외교부 노규덕 대변인이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정부는 그동안 여러 계기에 북한의 CVID를 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며 남북 간 협의에서도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북미 수교 협상 동시에 진행"
이런 복잡한 방정식을 어떻게 잘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관건이 될 것이며, 기존 방식과는 다른 창의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금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지각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며 "기존 체제나 관료적 사고방식으로는 해법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와관련해 북한 비핵화의 최종적인 보상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의 선물을 주기로 했던 기존 북핵 해법은 모두 실패한 만큼,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도 언급한 '비핵화와 북미 수교 병행' 방식이다. 물론 중국은 평화협정 체결 당사국으로서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자신들이 배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를 강조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미 실패한 기존 모델을 답습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북미 양측의 핵심 요구를 의제별로 몇 개의 트랙으로 나눠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우려를 해소해 나가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홍민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체제 보장을 담보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정도의 카드'를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아야 '비핵화와 핵 폐기 카드'를 내놓을 수 있다"며 "미국으로서도 압박과 제재를 계속한다고 해서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게 사실"이라며 이 지점에서 빅딜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무진 교수는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나아가 평화체제 구축 등과 관련한 큰 원칙과 방향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고 구체적인 것은 후속 고위급 실무회담에서 이행과 검증 방안을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남북정상회담은 바로 북미간에 이런 큰 틀의 빅딜이 성사되도록 하는 징검다리가 되는 막중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은 물론 동북아의 안보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대형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힌 고차 방정식을 남-북-미 3자가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