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DB의 숫자 '3', 편견을 깼고 KBL 역사도 바꿨다

프로농구 원주 DB가 2017-2018시즌 정규리그를 제패했다 (사진 제공=KBL)

"우리 3승은 할 수 있겠지?"

프로농구 원주 DB의 김주성과 이상범 감독이 2017-2018시즌을 앞두고 나눈 대화다. 9경기가 열리는 정규리그 1라운드의 목표 승수는 3승이었다.

DB는 꼴찌 후보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즌을 시작했다. 그런데 개막 3경기만에 3승을 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다.

DB는 기세를 몰아 1라운드에서 목표의 2배가 넘는 6승(3패)을 달성했다.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다가 새해 첫날 1위를 탈환했고 1월 한달동안 100% 승률을 기록했다.

이후 한번도 1위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정규리그 우승을 결정지었다.

1경기를 남기고 37승16패를 기록한 DB는 2011-2012시즌 이후 6시즌만에 처음이자 전신 시절을 포함, 통산 5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올 시즌 DB에게 숫자 '3'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DB의 농구는 박진감이 넘쳤고 호쾌했다. 디온테 버튼은 화려했고 두경민은 KBL 국내선수 중 누구보다 공격적이었다. 두 선수가 수비를 뒤흔들고 외곽으로 공을 빼주면 김주성, 윤호영, 김태홍, 서민수 등이 주저없이 3점슛을 던졌다.

그런데 DB의 야투(2점+3점) 성공률은 44.5%로 리그 10개 구단 가운데 꼴찌다.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낮은 야투성공률을 기록한 팀이 해당 시즌 정규리그를 제패한 사례는 2017-2018시즌 원주 DB가 최초다.

그렇다면 올시즌 DB의 득점력이 약했는가. 아니다. DB는 시즌 평균 득점 부문에서 85.2점으로 서울 SK(87.3점), 안양 KGC인삼공사(87.0점)에 이어 리그 3위에 올라있다.

DB가 이같은 기록을 남긴 이유는 2점슛보다 성공률이 낮지만 기대 득점 수치는 1.5배가 높은 3점슛 시도 비율이 타 구단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DB는 올시즌 경기당 27.0개의 3점슛을 던졌다. 프로농구 역사상 DB보다 시즌 3점슛 시도가 많았던 구단은 2000-2001시즌 창원 LG(28.3개)가 유일하다.

(당시 LG의 3점슛 성공률 역시 40.3%로 압도적인 리그 1위였다. 조성원과 조우현, 에릭 이버츠, 오성식, 김태진 등이 활약한 시즌이다)

DB는 지난해 10월28일 서울 SK와의 원정경기에서 무려 47개의 3점슛을 던졌다. KBL 단일경기 기준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2위는 문경은과 우지원의 '몰아주기' 3점슛 왕좌 대결이 펼쳐졌던 2004년 2경기로 기록의 가치를 따질 필요가 없다. 3위는 2001년 LG가 기록한 52개.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당시 LG는 KBL 역사상 최고의 3점슛 부대였다)

작년 10월28일은 DB의 개막 5연승 행진에 제동이 걸린 날이다. DB는 3점슛 47개 중 13개를 넣어 28%의 성공률에 머물렀다. 기록지만 보면 3점슛 남발이 패배의 요인 같다. 하지만 이상범 감독은 경기 후 "슛을 만드는 과정이 좋다면 3점슛을 얼마든지 던져도 좋다"고 말했다.

DB 선수들은 시즌 내내 3점슛을 과감하게 던졌다. 이상범 감독은 3점슛 실패를 두고 선수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픈 기회가 왔을 때 던지지 않는 선수가 질책을 받았다. 누가 슛을 던져야 하는가. DB는 선수의 이름값도, 연봉도 신경쓰지 않았다. 센터도 기회가 오면 슛을 던져야 했다. 편견을 깼다.

3점슛 성공률은 33.7%로 리그 중위권. 많이 던진만큼 실패도 많았지만 시도가 많았기에 성공했을 때 얻은 짜릿함도 컸다. DB가 올시즌 유독 역전승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도 '쫓아가는' 득점 싸움에서 강했기 때문이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3점슛이다.

그렇다고 DB는 막무가내로 3점슛을 던지는 팀이 아니다. 최근 국제농구연맹(FIBA) 주최 대회나 미국프로농구(NBA) 등에서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드라이브 앤드 킥(drive and kick)' 전술을 기반으로 한다.

버튼과 두경민이 1대1 혹은 2대2 공격을 통해 골밑으로 파고들면 상대 수비가 안쪽으로 몰린다. 이때 나머지 4명 중 최소 3명 이상은 3점슛 라인 바깥에서 패스가 나올 수 있는 길목을 찾아 움직인다. 밖으로 내주는 한번의 패스 혹은 추가로 연결되는 패스가 3점슛 기회를 만든다.

DB에는 김주성과 로드 벤슨이 있지만 올시즌 포스트업 공격 비중이 높은 팀은 아니다.

원주 DB의 정규리그 우승에 기여한 두경민(사진 왼쪽)과 김주성 (사진 제공=KBL)


그렇다고 3점슛만 던진 것도 아니다. DB는 포스트업 비중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슛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구간으로 알려진 페인트존 내 슛 시도 부문에서 리그 3위다.

국내 최장신 센터(221cm) 하승진과 찰스 로드, 안드레 에밋을 보유한 전주 KCC(39.2개), 정상급 센터 버논 맥클린이 활약한 고양 오리온(37.8개) 다음으로 많은 평균 35.6회 시도를 기록했다.

버튼과 두경민의 2대2 플레이를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할 때 1차 목표는 골밑 공략이다. 이는 더 많은 움직임과 슛 기회를 만들어냈고 자연스럽게 외곽슛 기회로 연결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슛 기회가 만들어지면 선수는 주저하지 말고 던져야 한다. 과정만 좋으면 결과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는다. 이같은 원칙은 "누구에게나 출전 기회를 준다"는 이상범 감독의 팀 운영 철학과 맞물려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줬다.

DB의 간판스타 김주성은 11일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뒤 "예상을 뒤집었다는 것이 가장 통쾌하게 느껴진다.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시즌이었다. 이상범 감독님도 편견을 깨고 선수들을 믿어주셨고 기회를 주셨다. 모든 편견을 다 깬 시즌"이라고 말했다.

또 올시즌은 그동안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던 김주성과 윤호영의 출전시간이 근래 가장 적었던 시즌이기도 하다. 윤호영은 지난해 아킬레스건 부상을 딛고 빠르게 복귀해 적응의 시간을 보냈고 김주성은 팀을 위해 식스맨 보직을 받아들였다.

이상범 감독과 나머지 선수들은 두 베테랑에 많이 의지해왔다. 윤호영이 복귀한 날 두경민이 경기 후 남긴 말이 윤호영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두경민은 "수비할 때 '아차'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 뒤를 돌아봤는데 (나를 도와주는) 동료의 등번호가 보였다. 호영이 형의 번호 13번이었다. '아, 형이 왔구나' 생각이 딱 들었다"고 말했다.

윤호영은 수비 전술의 핵심이었을뿐만 아니라 경기당 17분을 뛰고도 팀내에서 3번째로 많은 2.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공격 조율에도 힘을 실어줬다. 김주성은 고비 때마다 공수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며 간판스타다운 면모를 발휘했다.

이 모든 조화가 원주 DB의 '꼴찌 후보 신화'를 만들어냈다. DB는 편견을 깼고 KBL 역사까지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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