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남성 대학생들의 여성차별적 게시글을 폭로하는 페이지가 대학별로 속속 등장했다.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을 보면 최근 대학가에서는 '○○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이라는 페이지가 대학교별로 개설돼 '좋아요' 수백∼수천 개를 모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페이지는 각 대학 내 익명 커뮤니티에 남자 대학생들이 게시하는 여성차별·성희롱 게시글을 모아서 보여주는 일종의 '큐레이팅' 서비스 형태를 띤다.
남학생들이 쓴 여성혐오나 성차별, 성희롱 성격의 게시글을 공유하면서 "○○대의 자랑이다", "○○대 학생들의 지성에 오늘도 감탄한다" 등 반어법적인 코멘트를 붙여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포인트다.
한 연세대생은 최근 학교 익명게시판에 "불법촬영물(몰카) 제작·유포는 불법이지만 시청은 불법이 아니어서 문제가 없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자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은 이를 공유하며 "몰카를 죄책감 없이 보는 연세의 자랑"이라고 풍자했다.
현재 전국 대부분 주요 대학에는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가 만들어진 상태다.
최근에는 '직장인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도 개설됐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 등에 올라오는 문제성 게시글을 폭로한다.
'사상과 가치관'처럼 남성들의 여성혐오·성차별 게시글을 그대로 보여주는 큐레이팅 페이지 '여혐별곡 대나무숲', '맞는말 대잔치' 등도 팔로워 수천 명을 넘기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같은 큐레이팅 페이지는 근래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을 대표하던 '미러링(남성들의 여성혐오 게시글을 남성혐오 언어로 똑같이 되돌려주는 시위 방식)'에 비해 남성들의 거부감이 덜하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생 김모(26)씨는 "미러링은 일부 남자들의 과격한 언어를 남성 전체로 일반화하는 느낌이어서 거부감이 강했다"면서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를 보고서야 여성혐오가 또래 남자들 사이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혐오 글을 공유·풍자하는 큐레이팅 SNS가 '미투' 운동의 연장선인 또 다른 내부고발 운동이며, 주요 대학이나 대기업에 속한 '엘리트' 남성도 음지에서 일상적인 여성차별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폭로하는 운동이라고 평가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미러링은 남성의 여성혐오를 사본으로 보여주는 풍자였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남성혐오로 격하했다"면서 "'사상과 가치관'은 여성혐오의 원본을 그대로 보여주며 '아카이빙(보관)' 기능도 있다"고 분석했다.
윤김 교수는 "일부 소수 남성뿐 아니라 학벌·지성·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여성혐오가 남성 사이에 보편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