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미투, 사회 전체의 문제… 다 같이 성찰해야"

[노컷 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②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일본 영화와 원작을 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개봉 당일부터 지난 5일까지 개봉 6일간 일간 2위를 지키며 순항 중이다. 누적관객수는 73만 명을 넘겼다. 다른 상업영화에 비해 적은 예산을 들였음에도, 말갛고 담백한 특유의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최상의 화면과 소리를 담기 위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눈부신 화면도 일품이지만 역시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아가씨'로 스타덤에 오른 김태리,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하나인 류준열,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진기주에 '믿고 보는' 문소리가 뭉쳤다는 소식에, 어떤 조합을 보여줄지 기대가 모아졌다.

영화 개봉 당일이었던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임순례 감독을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캐스팅 1순위가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그에게서 배우들을 선택한 배경을 물었다. 또한 최근 각 분야에서 쏟아지는 '미투'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노컷 인터뷰 ① 기다림과 정성이 빚어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일문일답 이어서.

▶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문소리 캐스팅 배경이 궁금하다. 캐릭터의 어떤 부분과 닮았는지도.

소리 씨는 워낙 여러 편 같이 했었고, 안 찍을 때도 사적으로 친분을 나누는 사이다. 워낙 연기를 잘하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엄마 역은 관객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적역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본인이 그걸 받아들였다.

태리 씨는 20대 배우 중, 제가 알고 있는 배우 중 가장 자연스러운 배우다. 뭔가 손대지 않은, 자연스러운 매력이 있다는 게 제일 컸다. 이 영화는 무조건 자연스러운 배우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준열 씨도 같은 맥락이다. 준열 씨가 '소셜포비아'나 '침묵' 등 특이한 역할도 할 수 있지만 건강한 청년 농부의 모습도 있다. 준열 씨가 가진 순박해 보이는 청년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기주 씨는 '달의 연인', '두번째 스무살', '굿와이프' 등에 나왔지만 영화계에서는 전혀 안 알려진 신인이다. 처음부터 드라마 쪽에서 찾으려고 한 건 아니다. 김태리, 류준열 캐스팅 상태에서 그분들과 케미가 맞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많지가 않더라. 방송 쪽까지 넓혀서 프로필을 받았다.

드라마는 아니고 어떤 예능에 나온 모습을 봤다. 아나운서 같이 나온. 그걸 봤는데 되게 귀엽고 신선하더라. 연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통통 튀고 귀여워서 불러서 간단하게 오디션을 보고 얘기를 해 봤더니 되게 순수하고 잘 자란 바른 친구더라. 키도 커서 태리 씨, 준열 씨랑 어울리겠더라.

어쨌든 제가 이런 면을 살렸다고 해서 캐스팅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역으로 생각하면 (배우들에게) 제안이 갔을 때 선뜻 받아들여 준 거니까. (왜 수락했냐고) 대놓고 물어본 건 아니지만. (웃음) 일정 등 다른 여건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1순위(로 둔 분들)가 다 됐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극중 소꿉친구인 혜원-재하-은숙의 관계를 보는 것도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세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나.

특별한 건 없었다. 은숙(진기주 분)은 그래도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이지 않나. 여기 시골이 답답답하고 싫고, 남자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재하를 좋아할 수밖에 없고. 혜원(김태리 분)은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 못 했고, 재하(류준열 분)도 여자친구하고 헤어진 지 얼마 안 됐고. 이런 때 삼각관계 같은 연애를 굳이 욱여넣고 싶지 않았다. 일시적인 재미는 줄 수 있겠지만 (영화의) 흐름을 바꾼다고 생각한 거다.

혜원의 고민과 상황에 맞춰서 (영화가) 가는 게 맞는 거지, 연애로 가면 영화 방향이 확 달라질 것 같았다. 떡 만들 때 혜원이 도시나 시골이나 연애는 관심없다고 하지 않나. 이런 게 요즘 관객들의 트렌드를 반영한 걸 수도 있다. 연애가 피곤하고 힘들어서 안 하고들 있다면서요. 다른 문제가 더 시급해서 연애를 사치라고 보거나 귀찮아하기도 하고. 물론 이 사회는 연애에 여전히 관심이 많지만, 너무 친밀한 데서 오는 피로감, 부담감, 책임감을 피하고자 연애를 안 하는 경향도 생긴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연애가 이 영화의 핵심으로 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그래도 원작에 비해 친구들의 비중이 커졌다. 이런 점에서 호불호가 갈리던데.

일단, 혜원이가 혼자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다. 요리 말고는. 맨날 가만히 고민할 수도 없고, 밭만 맬 수도 없고. 제한적이니까. (웃음) 관객들이 지루함을 덜 느끼고 좀 더 반응하려면 어쨌든 친구들이 와야 하지 않겠나. 재하 비중에 조금 불만을 가지는 분들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영화라는 게 100명이 보면 100명의 반응이 있기 때문에 다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친구들이 더 자주 나오며 왁자하게 됐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나 사건들을 관객이 더 편안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1996년 '세친구'로 데뷔해 어느덧 데뷔 20년이 훌쩍 넘었다. 앞으로도 더 작품 활동을 할 텐데 이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하는 화두가 있는지.

영화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질문이) 포괄적이라 하나로 묶어서 말씀드리기는 되게 어려운데… 사회가 너무나 인간 중심적이고, 그 사회 안에서도 능력이 많거나 화려하거나 잘난 그런 사람들 얘기보다는 음지에 있거나 평범한, 아웃사이더에게 훨씬 관심이 많다. 대중영화에서는 그런 캐릭터 별로 안 좋아하지만. (웃음) 제가 추구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캐릭터가 상충되니까, 접점을 잘 찾으면서 제 영화를 만들어가려는 게 화두이자 고민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 엄마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대표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그렇고 이번 '리틀 포레스트'도 그렇고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생생하게 그려냈는데,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을 영화에 반영할 계획인가.

제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여성 주인공을 더 많이 쓰거나, 그러는 건 되게 어려울 것 같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게 여성을 대상화하고 왜곡하지 말자는 건 안다. (감독으로서) 좀 더 바르게 그려야겠다는 마음은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여주인공을 써서, 그런 여성주의적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영화를) 진행하진 않는다.

▶ 연극계를 중심으로 각 분야에서 '미투'(#Me_Too, '나도 말한다'는 의미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는 일) 물결이 한창이다. 영화인으로서, 혹은 한 시민으로서 '미투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모든 분야와 다 관련돼 있고, 영화·방송계도 피해 갈 수 없을 거다. 특히 영화는 여러 사람이 관련돼 있다. 만약 다음 달에 개봉하는 영화에서 배우나 제작진 한 명이라도 관련돼 있다면, 그 한 명 때문에 개봉을 못하거나 타격을 입는다는 거다. 그런 것들이 다른 업계와 조금 달라서 심각하고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영화계라고 해서 피해갈 수는 없지만,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특정 분야를 비난하기보다는 한국사회 전체가 다 같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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