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엄마라서, 아내라서"…20년 침묵 끝 '#미투' ②근데 죄인은 나...'이방인' 노동자의 #미투 |
이역만리 타지에서 당한 성추행 피해자로 고통받다 오히려 형사재판 피고인이 되버린 이방인. 한국말도 서툴고, 한국법도 잘 모르는 그는 간신히 #미투를 외치고 있다.
◇ 같은 국적에게 당한 성추행…사장도 동료들도 "쉬쉬"
지난 2015년 한국에 들어온 네팔 국적의 시타(가명·29) 씨는 지난해 5월 경기 광주시의 한 사업장에 자리 잡았다. 직원 12명 중 네팔인이 9명. 적응이 편할 줄 알았다.
기대는 사흘 만에 깨졌다. 같은 네팔인이자 작업반장인 마가르(가명) 씨가 치근대기 시작했다. 자꾸 '화장실을 같이 가자'고 해댔고, 밤에 찾아와 방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업무시간에 내내 전화를 걸어 "남자친구와 그만 만나고,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여기 공장에서 나가야 할 거야"라며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게 시타 씨 말이다.
시타 씨는 네팔인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무의미했다. 다들 마가르 씨에게 사실상 '종속' 관계였다. 7년 넘게 일한 마가르 씨에 대한 사장의 신임이 두터워, 그의 눈밖에 난다는 건 곧 퇴사였다고 한다.
시타 씨는 용기를 내 사장을 찾아갔다. 돌아온 말은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 였다고 한다.
결국 사달이 났다. 취업 넉 달 만이던 그해 9월 공장 내 세탁실에서 마가르 씨가 가슴을 만졌다는 게 시타 씨의 설명이다. 시타 씨는 주변에 있던 파이프를 들었다. 본능적인 정당방위였다고 한다. 몸싸움이 벌어지려던 때 경찰이 도착했다. 두 사람은 서로 폭행한 혐의로 붙잡혔다.
◇ 한 번 더 작업장을 옮기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
시타 씨는 어리둥절했다. 경찰조사에서 항변했지만, 한국어가 서툴었다. 동료들은 시타 씨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마가르 씨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 시타 씨는 짐작했다.
마가르 씨는 폭행 혐의가 적용됐는데, 시타 씨는 쇠파이프를 들었다는 이유로 '특수 폭행' 혐의가 적용됐다. 성추행 정황은 공소장에 아예 없었다.
마가르 씨가 한국어로 된 합의서를 내밀었다. 시타 씨는 네팔어로 요구했지만 만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동료 네팔인은 '니가 때린 거 아니라고 적혀있어, 너 잘 되라고 여기다 사인하라는 거야'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재판에서 유죄를 받고 벌금이 크게 나오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말은 시타 씨를 덜컥 사인하게 만들었다.
속아 넘어갔다는 걸 알게 된 시타 씨는 법률대리인인 최정규 변호사를 통해 뒤늦게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재판 결과보다 걱정스러운 건 시타 씨가 한 번 더 이런 경험을 겪으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 있다.
현행 외국인고용법에 따르면,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은 최대 3회만 가능하다. 병 때문에 이미 두 번 사업장을 옮긴 시타 씨에게 이제 남은 횟수는 없다.
법이 사업주로부터 받은 성범죄나 폭행은 보호해주고 있지만, 근로자끼리는 발생한 일은 테두리 밖이다.
시타 씨는 "한국은 여자에게 안전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아무도 내 편이 되주지 않았다"면서 "나는 한국에 더 있어야 해서 앞으로 이런 사건 자체를 만들지 않을테지만, 또 다시 이런 일을 겪으면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했다.